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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공단 위험성평가…정부기관의 안전불감증 [공기업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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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 23명의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대형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이 산업안전보건공단(이하 공단) 주관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으로 3년 연속 인정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단 및 고용노동부의 안일한 안전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리튬 등 화학물질 관련 안전수칙 강화에 대한 지적이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닌 만큼 전반적인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주영·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설립된 아리셀은 2021년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3년간 공단으로부터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돼 산재보험료 총 약 580만원 감면 혜택을 받았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이 스스로 유해·위험 요인을 찾고 개선하는 과정으로, 법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가 참여하는 위험성평가를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사업주가 위험성평가 인정신청서를 제출하면 공단은 현장실사 등 심사를 거쳐 적합한 사업장에 대해 증명서를 발급한다.

본지가 확보한 아리셀의 위험성평가 인정심사 결과서에 따르면, 2021년 2월 신규 인정 당시 아리셀은 81점(인정기준 70점)을 받아 우수사업장에 선정됐다. △사업주의 관심도 △위험성평가 실행수준 △구성원의 참여 및 이해수준 △재해발생 수준 등 항목에서 대체로 높은 점수를 받은 가운데, 사업장 내 안전보건방침 및 목표를 사내 게시판 등 근로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지 않은 점, 위험성평가표 상 개선이 필요한 위험요인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 일자가 기입되지 않은 점, 근로자들의 직접적인 유해위험발굴 참여도가 다소 떨어지는 점 등이 지적됐다. 각종 인화성 화학물질 사용에 따른 안전교육도 당부했다.

2022년도 아리셀 위험성평가 사후심사 평가서 일부. 자료=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제공

2022년 12월, 2023년 12월 각각 진행된 사후 심사에선 88점과 75점을 받아 우수사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안전보건방침 및 목표를 근로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지 않고, 근로자 참여도가 떨어지는 점 등 개선사항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아 재차 지적됐다. 심지어 2022년 우수사항으로 평가받았던 ‘위험성평가 방침·목표 수립’은, 2023년 평가에선 수립조차 되지 않아 개선사항으로 지적됐다.

근로자 참여도가 낮다는 공단의 지적은 이번 화재 희생자 중 다수를 차지하는 파견 노동자들의 위험성평가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방증했다. 실제로 용역업체를 통해 아리셀에 투입된 근로자들이 별도의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경찰은 불법파견 여부 등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아울러 재해발생 수준 항목에선 매년 ‘최근 1년간 무재해 사업장으로, 앞으로도 내실있는 위험성평가를 통해 재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지속 관리해 달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아리셀 공장에선 2021년 2회, 2022년 1회, 올해 1회 등 총 네 차례 화재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돼 다소 안일한 심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공단 관계자는 “50인 미만 사업장엔 인력이 많지 않고 안전관리에 대한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위험성평가는 강제적·규제적 성격보다는 산업현장의 위험요소 관리를 더 많은 사업장이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차원의 제도”라며 “공단은 고용노동부 등 정부에서 시행한 제도를 현장에서 관리하는 실시기관이며, 고용노동부에서 해당 제도에 대한 전면 개편을 약속한 만큼 좀 더 현장에 적용이 잘 되도록 검토·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배 의원은 “근로자 참여도 부족, 화재 폭발 우려 등 여러 지적사항이 꾸준히 있었음에도 높은 점수를 받고 우수사업장이 된 것은 굉장히 제도 자체가 형식적으로 운영돼 왔다고 볼 수 있다”면서 “공단 관계자로부터 제품화된 리튬 배터리에 대한 분류 및 관리가 전반적으로 취약하다는 말을 전해 들어 이에 대해 주시하고 대비책을 고심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5일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리튬 배터리 등 화학물질 완제품 보관·관리 규제 미흡

리튬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일반화학물질로, 안전보건공단 화학물질정보(MSDS)에 기재돼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화학물질관리법 규제 대상은 아니다.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제3류 자연발화성물질 및 금수성물질’로서 관리되고 있다. 리튬이 고체 덩어리 상태(배터리 등)에선 순 산소와 접촉해도 상온에서 자연발화하지 않고, 물과 반응해 수소를 발생시키지만 다른 알칼리 금속 대비 반응속도가 느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리튬으로 만들어진 배터리 등 완제품은 MSDS 작성·제출 대상도 아니다. 별도의 대응 매뉴얼이나 안전기준 의무사항이 없다. MSDS를 취급하는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관련 내용을 교육하고 사업장에 대응 매뉴얼을 배치해야 하는데, 아리셀 공장에는 이것이 사실상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사실 리튬 배터리 관련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육군에서만 총 31건의 리튬전지 파열(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중에는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 제품(3건)도 있었다.

지난 2019년 세종시 육군 보급창고에서 242억원, 2021년 3억40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앞서 리튬 배터리 제조 및 보관 과정에서 이러한 사고가 잦았던 만큼 사전에 물질기준이나 안전수칙을 강화했다면 대형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공단은 정부위탁기관으로, 안전수칙이나 위험물질 지정 등 법·제도적 부분에 있어서는 고용노동부가 행정 권한을 갖고 있다”면서 “다만 고용노동부가 공단 등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법·제도에 반영하거나 하는 절차는 있다”고 설명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차전지는 그간 화재가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해 안전기준 등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리튬은 충격을 받으면 폭발할 수 있고 엄밀히 화학물질에 해당하기 때문에 관련 안전수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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