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엄마역할 즐기는 佛여성
한국에선 출산·양육·교육에 짓눌려
육아·자기삶 병행하는 환경 갖춰야
‘엄마는 미친 짓이다’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주디스 워너의 작품으로, 원제 ‘완벽한 광기(perfect madness)’의 한국어 번역본 제목이다.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적나라한 일상을 생생히 담아낸 덕분에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책의 앞부분에는 3년간 프랑스 특파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필자가 가까이서 지켜본 프랑스 엄마와 미국 엄마에 대한 흥미로운 비교가 등장한다. 돌이켜보니 프랑스 엄마들은 유유자적 여유롭게 엄마 역할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이 짙었는데,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두 가지가 집히더라고 했다.
첫째로는 유럽식 복지제도가 주는 안정감이 지목되었다. 출산부터 양육을 거쳐 교육에 이르는 전 과정이 엄마 혹은 가족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음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질투 어린 진단이었다. 워킹맘 친화적인 육아휴직 제도는 물론이요, 시장 메커니즘을 배격한 공공성에 기반한 양육 및 교육 시스템은, 엄마 역할에 부과되는 부담을 완화시켜주는 데 분명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진단이 보다 흥미로웠는데, 프랑스 엄마들은 너나없이 굳이 프로페셔널 맘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다양한 상황에 맞춰 아마추어 맘에 만족하더라는 것이다. 어차피 엄마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지 않은 데다, 아이 고유의 타고난 잠재력은 교육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발현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결과 대다수 엄마들이 ‘완벽한 엄마’가 되리라는 환상에 발목 잡히지 않은 채, 오히려 엄마 역할을 부담 없이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프랑스 엄마들이 보여준 아마추어적 모성은 ‘집중 모성(intensive mothering)’ 혹은 ‘과잉 모성’이 대세인 미국에 돌아와서 보니 그 미덕이 더욱 두드러지게 다가왔다고 한다. 특히 고도로 발달된 시장 메커니즘이 미성숙한 복지 시스템을 압도하는 미국에서는, 양육과 교육의 질(質)이 개별 가족의 경제력에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에 절망감이 밀려왔고, ‘완벽한 엄마’가 되리라는 환상을 부여잡고 기꺼이 헬리콥터맘·드론맘·타이거맘을 불사하는 현실 앞에서 좌절감에 빠졌다고 했다.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은 열망에 휘둘린 나머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번아웃에 빠지는 자신을 보면서는 더더욱 프랑스 엄마들의 아마추어 맘 정신이 그리웠다고 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합계출생률 1.0을 목표로 출산 부양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요즘, 아마추어 맘에 왠지 자꾸만 눈길이 간다. 최근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단연 초저출산이 화두에 올랐는데, 그 자리에서 확인한 건 여성들 사이에 엄마 역할에 부여하는 의미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1960~1970년대 출생한 여성들만 해도 “돌이켜보면 그래도 자식들 키울 때가 행복했고 나름 보람 있는 나날”이었다는 데 동의했다. 한데 1980년대생으로 오자 “솔직히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이 내 인생을 희생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이름하여 ‘자발적 무자녀’ 가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무자녀를 선택하게 된 이유로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 솔직히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가 단골로 등장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희생한 만큼 나도 자식을 위해 희생할 자신이 없다’는 고백도 빈번히 등장한다.
실제로 모성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매우 드라마틱한 변화가 전개되어 왔고 문화권별로 현란할 만큼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연 엄마 역할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움직여왔는데, ‘완벽한 엄마’라는 일종의 환상이 출산 양육 교육 과정에 부담과 불안 나아가 공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왜 아이를 안 낳으려 할까?’를 묻기보다 ‘왜 아이를 낳으려 할까?’를 물을 때라 했던 누군가의 주장이 자꾸 귓가에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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