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우유가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
수입산 멸균우유가 유통기한이 길고 우수한 원유를 사용했다는 검증되지 않은 과장된 정보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폴란드와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7개국에서 수입된 30여 개의 수입 멸균우유 제품이 시판되고 있다. 낙농 선진국에서 제조된 멸균우유는 가격이 저렴하고 유통기한도 길어 구매자들에게 현명한 소비처럼 보일 수 있다. 수입산 멸균우유의 가격과 품질은 어떨까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멸균우유 수입량은 2020년 1만 1413톤에서 2023년 3만 7361톤으로 3.3배 증가했다.
평균 가격을 보면 수입산 멸균우유가 국내산보다 저렴하지 않다. 예를 들어, 폴란드 M사는 1L당 1600원, 독일 S사는 1950~2200원, 이탈리아 L사는 2160~3000원이다. 특히 영국 J사는 왕실용 우유로 홍보하며 최고가 2만 원대로 판매되고 있다. 반면, 국내산 멸균우유는 1L 당 1540~2280원으로 폴란드산 멸균우유만이 국내산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폴란드는 일반적으로 낙농 선진국이라 불리지 않으며, 고품질 원유를 생산하고 역사가 깊은 낙농 선진국들의 멸균우유는 오히려 국내 멸균우유보다 높은 가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수입산 멸균우유는 가격 외에도 문제가 있다. 소비자가 비교·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적혀있지 않으며, 원유 등급을 확인하기 어렵다. 국내산 우유는 살균 처리 방법과 체세포 수, 세균 수를 기록해야 한다. 수입산 멸균우유는 대부분 살균 처리 방법만 표기하고 체세포 수와 세균 수를 적혀있지 않다.
국내산 우유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기준에 부합하는 원유만 가공·판매하고 있다. 이홍구 건국대 동물생물과학대 교수는 “먼 거리에서 장시간 운송되는 수입산 멸균우유는 유통기간이 길 수밖에 없어 신선함을 느끼기 어렵고, 부패를 막기 위한 처리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우유는 세균 수 1A, 체세포 수 1등급 원유를 사용해 제품에 표기하지만, 수입산 멸균우유는 품질에 대한 정보를 알기가 어려워 안전성도 검증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국내산 멸균우유는 평균적으로 유통기한이 12주 내외로 설정돼 있으며, 이는 1년인 수입산 멸균우유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짧다. 사실 1년으로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멸균우유는 12주가 지나면 ‘크림화 현상’이 발생하여 유지방이 분산되면서 소비자들이 품질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미생물이 증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 국내 멸균우유는 유통기한을 12주 내외로 짧게 설정해 관능 품질을 높인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우유 소비량은 2001년 1인당 63.9톤에서 2021년 86.1톤으로 증가했지만 자급률은 2001년 77.3%에서 2021년 45.7%로 감소했다. 자급률은 국내 소비량 대비 국내 생산량 비중을 뜻하는데, 국내 우유 생산량은 2001년 233만 8875톤에서 2021년 203만 4384톤으로 약 30만톤이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수입량은 65만 2,584톤에서 251만 1,938톤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즉, 수입 유제품이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높였다는 의미다. 하지만 수입산 멸균우유의 95% 이상은 B2B 시장으로 유통된다.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은 UN 식량농업기구 5대 관리 품목에 포함될 만큼 우리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필수식품이다. 제품의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지만, 식량안보의 차원에서 우유 자급률 향상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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