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큰 사고 터질 때마다 기사가 매번 똑같은 거 같다.”
‘시청역 참사’ 희생자 조롱 문제와 관련한 기사 발제를 놓고 데스크가 한 말이다. 같은 구조의 기사를 답습하지 말라는 주문이었지만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2차 가해 문제가 기본값이 됐다. 사고가 터진 뒤면 희생자나 유가족을 향한 혐오 표현이 놀이처럼 번지고, 이를 지적하는 일이 기자에겐 반복됐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의 처벌 방침도 ‘수사'(修辭)에 그칠 뿐이었다.
시작은 세월호였다. 약자를 향한 혐오 정서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와 맞닿아 있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를 향한 혐오 표현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건 세월호 참사다. 희생자들을 ‘어묵’, ‘오뎅’으로 빗대 조롱한 게시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유가족 앞에서의 ‘폭식 투쟁’은 각종 재난·사고 이후 반복되는 2차 가해 문제의 효시에 가깝다.
이 같은 희생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은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여름, 연이은 흉기 난동 사건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심지어 ‘칼부림 예고글’이 일종의 ‘챌린지’ 놀이처럼 번지면서 상당 기간 경찰의 수사력이 낭비됐다.
혐오는 희생자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변주됐다. 지난달 24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공장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했던 당시에는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인 노동자로 확인되자 희생자 조롱에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 정서가 덧씌워졌다. 특히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담은 게시글이 다수를 차지했다.
시청역 참사 희생자 조롱에는 젠더 이슈가 개입되면서 공론의 장은 더욱 난장판이 됐다. 사망자들이 모두 남성이라는 점을 들어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혐오 표현이 새어 나왔고, 이 같은 이슈가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시청역 참사라는 본래 문제보다 게시자의 성별, ‘범인 찾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 사고 현장 추모 공간에서 모욕적인 메모를 남겨 입건된 2명의 피의자가 모두 남성인 것으로 밝혀지자 여론은 출렁였고, 일부는 다시 남은 ‘범인 찾기’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커뮤니티에 있는 일부 혐오 표현을 기사로 옮기는 게 맞는지 갑론을박이 오갔다. 실제 여론과 간극이 큰 극소수의 혐오 표현을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 확대 재생산하는 게 어떤 사회적 가치가 있냐는 의문에서다.
사실 이 같은 지적도 세월호 이후 반복되고 있다. 당시에도 혐오 표현의 주된 전달자는 언론이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혐오 표현을 드러내서 공개 처형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희생자에 대한 조롱이 어떤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이 같은 행위가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알리는 데서 사회적 효용을 다했다. 아직 한국 사회는 사고 이후 반복되는 희생자 조롱을 멈추는 데 실패했고 이를 답습하고 있다.
시청역 참사 조롱 글이 다뤄지는 방식은 이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특정 성별의 범인 찾기만 남은 논의에는 또 다른 혐오 표현이 덧씌워질 뿐이다. 혐오 표현을 지적한다며 혐오를 자행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우리 사회의 지금 수준이다. 여기에는 ‘드릉드릉’, ‘집게손가락’ 등 최근 이어진 혐오 시비가 얽혀 있다. 각자가 자기 입맛대로 혐오 표현을 규정하며 서로를 규제하려 드는 모습이다.
무엇이 혐오 표현인지부터 규제 기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다. 혐오의 연쇄 고리를 끊는 일은 여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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