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한국에도 수입됐다. 그러나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국내 법망을 피해 수익을 대부분 본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배당’은 흔한 고전적 수법이다. 한국 법인이 자신들의 상호나 상표를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로열티(royalty)’를 챙겨가고, 기술 및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각종 사용료’를 뜯어가는 방법도 애용된다. 기부 등 사회공헌활동에 소홀하고 제품 가격을 수시로 인상하면서 한국 시장을 마치 ‘봉’으로 여기는 듯한 모습이다. 외부감사와 공시를 피하고자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가 외국계 기업에 대한 규제는커녕 제대로 세금조차 거두지 못하고 있다.
로열티·가격 올리기 등
대기업과 손잡은 몇몇 외국계 기업은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해외 본사에 고스란히 보내고 있다. 특히 로열티나 기술자문료 등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기에 시장에선 법인세 차감 효과도 챙기면서 국부 유출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이 네슬레와 손잡고 만든 합작회사 롯데네슬레코리아는 적자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술도입료 명목으로 매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해외 본사로 보내기도 했다. 최근 3년간 회사는 2021년 37억 원, 2022년 37억 원, 2023년 36억 원씩 총 110억 원가량을 보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규모는 1억2002만 원에 그쳤다.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이하 넷플릭스)는 최근 한국에서 780억 원 규모 조세불복 행정소송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방국세청이 2021년 세무조사를 해 추징한 세액이 부당하다는 내용이다. 당시 서울국세청은 넷플릭스가 매출 대비 세액이 적다는 점을 문제로 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넷플릭스의 국내 매출은 4154억5005만 원이지만 낸 법인세는 21억8000만 원에 불과하다. 매출액의 0.5%밖에 내지 않은 것이다. 이는 넷플릭스가 네덜란드 법인에 한국에서의 이용료를 재판매하는 식으로 매출을 깎아내리면서 가능했다. 국세청은 이를 위법행위로 보고 고강도 세무조사를 통해 800억 원을 추징했다.
불가리코리아는 지난해 이탈리아 본사에 로열티로 121억31만 원, 시스템 사용과 관련 자문 수수료 26억7364만 원, 백화점 매장 판매 수수료 441억3919만 원 등을 지급했다.
한국코카콜라는 미국 본사에 로열티 비용을 명목으로 지난해 404억 원 넘게 냈다. 이는 지난해 당기순이익(701억 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다.
5월 결산법인인 글로벌 동물영양전문 기업인 카길애그퓨리나는 지난해 특수관계자인 캔 테크놀로리지스(CAN Technologies, Inc.)에 기술자문료로 194억 원을 지급했다.
한국하겐다즈는 하겐다즈인터내셔널쇼프 컴퍼니에 8799만3000원의 상표사용료(지급수수료)를 냈다. 판매한 제품의 순매출 3%를 상표사용료로 주기로 한 프렌차이즈 계약을 맺은 데 따른 것이다.
담배 ‘말보로’ 및 전자담배 ‘아이코스’로 유명한 한국필립모리스는 지난해 731억 원을 로열티로 본사에 지급했다. 전기 623억 원보다 100억 원 이상 많다.
한국법인은 쌈짓돈
고전적 수법인 ‘고배당’ 행태도 여전했다. 순이익과 맞먹는 금액을 배당으로 보낸 예도 있다.
대표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해 당기순이익 전액에 해당하는 1898억 원을 배당했다. 3년째 순이익을 전액을 쓰고 있다. 독일 본사가 51%, 홍콩계 투자회사 스타오토홀딩스가 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 전액을 3년 연속 배당에 모두 썼다.
루이비통코리아도 지난해 전년 대비 68.7% 늘어난 3800억 원의 배당금을 프랑스 본사에 전부 지급했다. 이는 루이비통코리아의 2022년 당기순이익(3800억 원)의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규모다.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기부금을 내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6월 결산법인인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은 지난해 3001만 원을 배당했다. 당기순이익 2999만 원 보다 많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2019년 위스키 브랜드 ‘임페리얼’ 판권을 매각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기명예퇴직 신청을 받기로 했다. 임페리얼 사업의 경영 실패 책임을 전적으로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남은 돈은 고스란히 본사로 가져가고 있는 셈이다.
고배당 사용료 송금은 외국계 기업이 법인세를 줄이는 데 활용되기도 해 비판이 더욱 거세다. 국내에서 번 수익 대부분을 로열티나 자문료 등으로 본사에 송금하면 과세표준이 낮아져 결국 한국 법인세를 거의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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