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에서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승리하면서 금융 시장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배제됐다. 공격적인 재정 지출을 예고한 극우 국민연합(RN)이 1당으로 올라서면 프랑스 재정 적자가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RN이 3위로 밀리면서 시장은 한숨을 돌렸다.
9일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7일(현지 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NFP가 전체 하원 의석 577석 중 182석을 차지했다. NFP는 이번 선거로 과반에는 미달하지만 1당 차리를 차지하게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인 앙상블(ENS)은 168석, RN과 그 연대 세력은 143석을 확보했다.
프랑스 의회 선거 제도는 1, 2차 투표로 나뉜다. 1차 투표에서 유효표 중 절반 이상이면서 등록 유권자의 4분의 1을 초과하는 지지를 받은 후보가 있다면 해당 후보가 당선된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후보가 없으면 득표 수가 등록 유권자의 8분의 1을 초과한 후보들 또는 득표 수 상위 2인을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한다. 이때 최다 득표한 후보가 당선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투표율이 떨어지면서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상위 2인을 대상으로 2차 투표가 진행됐다.
지난달 30일 있었던 1차 투표에서 1위였던 RN은 2차에서 3당으로 내려앉았다. 선거 직전 여론 조사에서 RN은 200~230석을 확보할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2차 투표 전 좌파연합과 범여권이 극우에 대항하기 위해 선거구 200여 곳에서 대대적으로 후보를 단일화하면서 RN은 예상 범위를 넘어선 패배를 맛보게 됐다.
RN이 세금 인하와 연금 확대 등의 공약을 내건 탓에 총선 전부터 RN이 집권하면 프랑스의 재정 적자가 급격히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잇따랐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싱크탱크인 몬테뉴 연구소는 RN이 공약한 주요 정책에 필요한 예산은 매년 약 200억유로(약 29조6000억원)다.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5%로, 유럽연합(EU)의 지침인 3% 이하를 이미 초과했다.
RN이 2당도 아닌 3당으로 내려가면서 시장은 재정 적자에 대해 단기적으로 안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NFP 역시 못지않게 재정 지출 확대를 말해왔다는 점이다. NFP는 은퇴 연령 하향 조정, 물가에 연동한 최저임금 인상안, 고소득자 증세를 주장해 왔다. 증세를 동반하면서 재정 지출을 확대하자는 얘기다.
NFP에 속한 최대 정당인 LFI 지도자이자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장뤼크 멜랑숑은 출구 조사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NFP의 재정 적자 확대 공약을 ENS와 타협 없이 고수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프랑스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원하는 사람을 총리로 지명할 수 있으나,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라 통상 최대 정당의 대표를 총리로 선택한다.
양지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NFP의 재정 지출 확대 공약이 전면 수용되지는 않더라도 상당 부분 차기 행정부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며 “프랑스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는 RN 승리 시나리오만큼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총선으로 유로화가 강세 압력을 받을 것이란 시각도 나왔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좌파와 중도파가 RN의 과반 의석 차지를 저지함에 따라 불확실성이 축소되면서 달러 약세와 유로화 강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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