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와 금융당국의 대출 억제책이 겹치며 사그라들었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를 대하는 금융당국의 스탠스는 이중적이다. 가계대출 급증 원인으로 금융위의 규제책 연기가 거론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대출이 심상찮다며 현황 점검에 나선 상황이다.
9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주담대 고정형(5년 주기형) 금리는 2.88~5.71%로 집계됐다. 지난 5일 2.90~5.74%보다 0.02~0.03%포인트(p) 떨어졌다.
은행 금리 하락은 고정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가 떨어져서다.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지난 5일 3.396%로 연저점을 기록했다. 한달전(3.664)과 비교하면 약 0.3%포인트 떨어졌고 최근 3개월 내 가장 높았던 지난 4월 29일 3.960%과 비교하면 약 0.6%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난다.
금리가 떨어지면서 가계대출 증가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5조3415억원 급증하면서 2021년 7월(6조2009억원) 이후 2년 11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어 이달 들어서면서 나흘만에 1조879억원이 불어났다.
당초 예정됐던 7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2단계 시행 전 ‘막차’ 수요가 몰렸다는 분석이다. 대출 신청과 시행까지 시간 차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7월 말까지 가계대출은 더 큰 폭으로 증가할 수 있다. 대출 수요가 몰린 것은 DSR 산정 때 가산금리인 스트레스 금리가 상향되면 대출한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책 시행이 돌연 두 달 연기되면서 막차에 타지 못했던 수요까지 쏠리고 있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시장 부양을 위해 가계대출을 풀어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한쪽에선 정책을 연기한 반면 다른 한쪽에선 고삐 죄기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두고 지난 3일 부행장 간담회를 소집한데 이어 오는 15일 현장점검에 나선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이행 적정성, 자체 가계대출 경영목표 수립 및 관리 실태 등을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금리 조정에 나서며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것으로 대응 중이다. 하나은행은 1일부터 주담대 우대금리 폭을 최대 0.20%포인트, 국민은행은 3일부터 주담대 가산금리를 0.13%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은행들은 기준이 되는 금리에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합해 금리를 결정한다.
은행권에서는 하반기 대출 수요가 더욱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은행채 금리가 더 내려갈 수 있어서다. 집값이 저점을 찍고 다시 상승할 것이란 관측도 ‘영끌 대출’과 ‘패닉 바잉(무리하게 구매하는 행위)’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복수의 은행관계자들은 “가계대출 총량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지만 최근 금융당국의 메시지는 일관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최근 은행채 금리가 내리면서 금리가 내려간 것과 내집 마련 수요, 특례 대출 등 정책 상품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대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은행이 금리를 조정하면서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것은 효과가 작을 뿐 아니라 예대금리차 확대에 따른 이자 장사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하반기에도 대출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만큼 정책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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