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감독·관리) 결과 삼일·삼정·안진·한영 등 빅4 회계법인과 중소형 회계법인의 수준 차이가 컸다. 일부 회계법인은 품질 관리의 효과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갖춰야 할 통합 관리 체계도 미흡했다.”
6월 12일 열린 상장사 등록 감사인 간담회에서 윤정숙 금융감독원 전문심의위원의 발언
금융당국이 중소 회계법인의 감사 품질 제고를 강조하며 점검 강도를 높이고 있다. 당국이 회계법인 내 인사, 자금 관리 등 경영 전반을 들여다보자 업계는 지나친 개입이라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일부 중소 회계법인은 당국의 제재 조치가 과도하다며 취소 소송에 나서는 등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9일 금융당국·회계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해 12개 중소형 회계법인에 대해 감리하고 있다. 이들이 상장사를 감사할 자격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2018년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도입 이후 당국이 지정한 등록 회계법인만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등록 회계법인 수는 빅4를 포함해 총 41곳이다.
당국은 중소 회계법인의 서비스 품질이 빅4와 비교해 크게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금감원은 등록 회계법인을 자산 규모 등에 따라 ‘가~라’ 군(君)으로 나눈다. 금감원이 2022년 이들 법인을 대상으로 감사인 품질 관리 감리를 실시한 결과, 빅4로 불리는 가군 회계법인에 대한 지적 건수는 평균 2건에 불과했다. 반면 나·다·라군은 지적 건수가 각각 10.7건, 11건, 11.7건에 달했다.
외부감사 규정에 따르면 등록 회계법인은 품질관리의 효과성·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회계법인 내 인사, 수입·지출의 자금관리, 회계처리, 내부통제, 감사업무 수임 및 품질관리 등 경영 전반의 통합관리를 위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번에 금감원도 이 규정을 근거로 들며 감리를 하는 것이다.
감리 대상 중소 회계법인들은 금감원이 통합관리체계를 실제로 운영하는지 확인한다며 일반직원 채용과 급여 등 인사·경영 전반을 들여다보는 상황에 불만을 터뜨린다. 간섭이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한 중소 등록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독권이 없는 컨설팅 등의 자료까지 달라고 하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감사 품질 강화에는 동의하지만, 금감원이 감리를 진행하면서 회계법인의 사실상 모든 자료를 요구하고 있어 지나친 경영권 개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법인은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전례도 있다. 지난해 한 중소 등록 회계법인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받은 ‘상장사 등록 감사인’ 유지 의무 위반에 대한 시정 권고에 반발해 집행정지 소송을 냈는데, 법원이 인용하면서 회계법인 손을 들어줬다. 이는 국내 회계법인이 증선위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받아낸 첫 인용 사례였다.
앞서 이 회계법인은 지난해 금감원의 품질관리 감리에서 담당 이사의 일시 부재, 법인 전체 수준의 인사관리 및 보상 체계 관리 미흡 등 7개 부문에서 지적을 받았다. 그 결과 시정 권고와 함께 지정 점수에서 180점이 제외되는 제재가 부과됐다. 지정 점수가 낮아지면 더 많은 기업을 감사할 수 없어 이는 곧 회계법인의 매출 감소와 직결된다.
최운열 신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도 금감원의 감리 방식에 대해서 이복현 금감원장과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최 회장은 후보 시절 “회계법인을 상대로 한 감리 목표는 감사 품질 제고“라며 ”인사, 노무 등 경영 전반에 대한 지나친 경영지도는 아니라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한 바 있다.
회계업계는 선진국처럼 회계 담당 전문 기관을 만드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산하에 회계 전담 조직인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를 두고 강력한 권한과 책임하에 전문적인 회계 감독을 하고 있다. 회계기본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PCAOB처럼 감리 전문가로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면 감리에 대한 업계 불만도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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