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초반부터 입법 동력을 상실했다. 야당이 정쟁 법안을 밀어붙이면 여당이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는 비정상적 국회 운영이 반복되면서 주요 경제법안 처리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8일 국회 상임위 회의록을 보면 22대 국회 개원 이후 지금까지 각 상임위원회가 민생·경제 법안 처리를 위해 법안소위원회를 연 경우는 전무하다. 지난달 20일 법제사법위원회가 법안1소위를 열긴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추진하는 채상병 특검법만 ‘원포인트’로 처리했다.
법안에 대한 심도 있는 심사는 각 상임위 마다 설치된 소위원회에서 진행된다. 국회법 제59조에 따라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15일간의 숙려기간(개정안 15일, 제정안 20일)을 거치면 소관 상임위에 상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임위 상정과 소위원회 회부는 동시에 진행된다.
이날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산업계가 주요 입법과제로 꼽은 △K칩스법 일몰 연장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AI기본법 △고준위 방폐물법 등에 대한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들 법안은 소위 회부는 고사하고 아직 관련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상태다.
‘K칩스법 일몰 연장’과 ‘고준위 방폐물법’ 등은 특히 처리가 시급한 법안으로 꼽힌다.
K칩스법의 일몰기한은 올해 말 도래할 예정이다. 지난해 3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로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대기업·중견기업은 15%, 중소기업은 25%)를 적용하고 있지만, ‘2024년 12월31일까지 투자하는 경우’라는 일몰기한을 두고 있다.
만약 올해 안 법안 처리가 좌절되면 국가전략기술 산업에 대한 대규모 자금 투자가 이뤄지는 도중 세제지원이 종료되는 만큼, 중·장기 투자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산업계 설명이다.
고준위 방폐물법도 6년 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된다는 점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건식저장시설 설치에 최소 7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화시점이 가장 먼저 도래하는 한빛과 고리원전의 경우 당장 설치에 착수해야 한단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법안 처리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채상병 특검법 등 범야권의 입법 강행으로 국회 일정이 줄줄이 파행되면서 22대 국회 전반기가 개점휴업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소위원회 구성조차 완료하지 못한 상임위가 수두룩하다. 현재 18개 상임위 중 소위원회 구성이 완료된 곳은 4개(법사위·환노위·과방위·문체위)뿐이다. 채상병 특검법·노란봉투법 상정 등 야당의 일방적 의사일정 진행에 반발해 여당이 회의에 협조하지 않은 탓이다.
간사 선임에도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법안 논의를 위해선 각 당 간사 간 조율이 필수적인데, 산자위·정무위·예결위 등 7개 상임위는 아직 간사 선임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농해수위와 법사위, 문체위는 야당 몫 간사만 선임돼 반쪽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7월 임시국회도 험로가 예상된다. 이달 중순쯤 윤석열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 재표결을 두고 여야가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민주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다 무산된 방송4법과 1호 당론 법안인 민생위기극복특별법도 정쟁의 씨앗이 될 전망이다. 야당은 7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이들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채상병 특검법 처리에 반발한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맡은 7개 상임위를 정상 가동할지도 미지수다. 당장 이날 예정됐던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현안 보고 청취도 취소됐다.
박준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7월 국회 일정에 대해 “여야가 협의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확정될 것”이라며 전당대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개원식 정도가 (협의)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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