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사회생활을 10년 이상 하다 보면,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선후배 한두 명은 생긴다. 나에게도 그런 선배가 있다. 한 달 전쯤, 가깝고 허물없던 우리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을 직감했다. 선배와 나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런 징후를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그날 퇴근길 선배에게 전화했다. “한잔하실까요?” “그러자, 나 지금 시청역 인근이야.” 나는 경복궁역 인근에서 1.8㎞쯤 걸어 시청역 인근에 이르렀다. 선배와 나는 술과 안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우리 사이에 그간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스며들었던 긴장감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너 내가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제가 선배 얼마나 믿고 있는지 아시죠?” “야, 다른 데 가서 한 잔만 더 하자.” “그러시죠. 가시죠!”
밤 9시 30분쯤. 우리는 시청역 광장 뒤편 인도 ‘중구 세종대로18길 2’를 지나 횡단보도 앞에 섰다. 불콰해진 얼굴의 직장인들이 우리 옆을 스치듯 지나쳐갔고 우리도 그들의 옆을 스치듯 지나쳐갔다.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흘러들어왔다. 시청역 일대의 밤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 채 스쳐 가는 인파로 이어지고 있었다.
저마다 사소한 사연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이날 밤에도 각자의 오해와 앙금과 피로를 풀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집에 들어가 잔소리를 들었을 테고, 누군가는 잠든 아이를 보며 위로와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됐을 때 다들 숙취에 허덕이며 일터로 향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정을 위해, 누군가는 빚을 갚기 위해, 누군가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누군가는 그저 습관처럼 출근길에 오른다. 그런 개별적인 삶은 시청역 주변으로 모여들어 보편적인 일상을 이룬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 일상은 안전할 것’이라는 보편적인 믿음을 품고 우리는 시청역 주변으로 걸어왔고 걸어갔다.
지난 7일 주말 근무 후 시청역 인근 ‘세종대로18길 2’를 다시 찾았다. 한 달 전 선배와 내가 걷던 이 인도에는 비닐 포장지에 담긴 국화들과 소주병, 컵라면, 추모 쪽지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곳은 1일 오후 9시 27분 차 모 씨(68)가 몰던 제네시스 G80 차량이 역주행하다가 돌진해 16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 현장이다.
세종대로18길 2와 주변에는 원래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가 9개 설치돼 있었다. 방호란 공격이나 충격을 막아 보호한다는 뜻이다. 방호 울타리는 사고 위험으로부터 일상을 보호하는 방패여야 했다. 그러나 사실상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것에 불과했고, 일상을 뭉개고 돌진하는 참사의 습격에 속수무책이란 점이 이번에 드러났다. 방호 울타리 9개 중 6개는 사고 직후 박살났다. 일부는 뿌리째 뽑혀 인근 상점 유리창을 뚫고 박혀있었다.
한 달 전 나와 선배는 사고 발생 시각과 비슷한 시간대에, 사고 발생 장소와 같은 세종대로 18길 2를 걸었다. 그때가 지난 1일이 아닌 ‘한 달 전’이라 다행인 걸까. 그날 밤 ‘우리는 무사했다’고 안도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앞으로 안전한 걸까.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차량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이 끝나야 사고 원인과 진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과수의 분석은 통상 한두 달이 걸린다. 사고 차량 운전자인 차 씨는 기계 결함에 따른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다. 운전자도 지방자치단체도 정부도 경찰도 소방도 참사 일주일이 지난 지금 본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런 까닭에 유족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 그저 허공에 대고 호소하고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로 숨진 은행 직원 이 모 씨(52)의 노모는 빈소에서 손수건을 쥔 채 “날 두고 어떻게 가느냐”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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