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이 전반적인 은행 경영을 총괄한다고 하면 부행장은 실질적인 사업을 담당하는 집행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뱅커 중엔 최고 자리까지 올라간 부행장을 우리는 ‘은행의 별’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부행장이 되기까지가 어렵고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본지는 부행장의 현황과 역할을 짚어보고 인터뷰를 통해 부행장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업무에 대한 이야기, 후배 은행원에 대한 당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영훈 그룹장, 20년간 현장 누빈 ‘PB전문가’
성과 인정 받아 1년 만에 부사장‧부행장 승진
취임한 지 1년 반만에 VIP 손님 평균 11% ↑
AI 자산관리 ‘아이웰스’ 자산규모 7300억 돌파
은행권 ‘최초’ 시도…새로운 것을 늘 고민한 결과
김영훈 하나은행 자산관리그룹장은 20년 간 주요 프라이빗뱅커(PB) 센터에서 근무한 ‘PB 전문가’다. 2002년 하나은행 목동지점 PB를 시작으로 압구정지점 골드클럽 골드(Gold) PB, PB 사업지원부 셀장, 소비자리스크관리섹션 유닛 리더, 자산관리그룹장 겸 WM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그룹 자산관리본부장과 은행 자산관리그룹장 겸 투자상품본부장에 선임되면서 그룹 부사장과 은행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하나은행이 ‘자산관리 명가’로 자리매김한 건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1995년 맥킨지 PB 컨설팅을 통해 현대적 개념의 PB 비즈니스모델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했다. 이후에도 금융권 ‘최초’ 서비스들을 출시하며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김 그룹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은행이 메뉴가 많은 집이면서 맛도 있는 ‘자산관리 맛집’으로 불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새로운 메뉴를 항상 개발 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도전적인 시도를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라고도 했다.
김 그룹장은 “플래그십 스토어, 비대면 인공지능(AI) 자산관리, 유언대용 신탁 등 전략적인 시도를 가장 먼저 했지만, 다른 은행들이 따라 하면 차별점이 될 수 없다”면서 “우리만의 색깔이 희석되지 않도록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한다”고 강조했다.
정형화된 PB 조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문화된 PB도 양성한다. 그는 “누구든 PB는 ‘자산관리 제너럴리스트’라고 정의한다. 이런 PB가 200명에서 300명 규모”라면서 “투자은행(IB), 기업금융 등 특정 분야에서 전문화된 직원도 PB로 데려와 추가 양성하고 있다. 이색적인 경력의 PB를 많이 기용해 손님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의 아이디어로 경희의료원, 인하대학교, 고려대학교 병원, 고려대학교 지점, 광운대학교 등 5곳에 PB를 배치하기도 했다. 대학교,대학병원 등에 위치한 점포는 점포특성상 일반적으로 PB가 배치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해 볼 만한 시도라고 판단했다. 김 그룹장은 “지금 당장은 자산 규모가 크지 않지만, 미래의 손님을 찾자는 의미다. 다양한 이벤트와 관리로 하나은행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전통적인 PB 모델로는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 처음에는 내부에서 반발도 있었다. 현재 반년 정도 지났는데 맨땅에서 시작한 PB들이 정말 대견하게 잘하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최근에는 비재무적인 영역을 차별화하고 있다. 내재화와 협업을 통해 고객이 선택할 만한 ‘세트 메뉴’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보통 일반 대형 신탁, 패밀리 오피스 등은 본점 부서에서 영업점의 업무수행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인데 우리는 본점의 전문조직이 전국 어느곳이나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고 있다”면서 “손님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와 솔루션에 한계가 없도록 확장하기 위해서다. 더 나아가 법인, 로펌, 세무법인 등 전문가들과 제휴를 통해 자산관리 서비스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자산규모 1억~10억원 사이 초기 자산가나 지점을 방문하기 어려운 고객을 위해 디지털로 쉽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은행권 최초로 초개인화 AI 자산관리 솔루션 ‘아이웰스’를 지난해 4월 출시했다. 김 그룹장은 이들의 65%가 은행에 오지 않고, 자기 주도적 자산 관리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밝혔다.
아이웰스는 출시 14개월 만에 자산관리 규모 7362억 원을 기록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정기 구독 수는 12만1858명으로 집계됐다. 투자뿐만 아니라 예금 거래 패턴까지 파악하고 있어 468개의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안한다. 수익률 또한 벤치마크보다 항상 높다.
그는 “편견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추천받는 포트폴리오와는 또 다르다. 사람에게 제안받는 경우 선호에 따라 각자 다른 상품을 추천한다”며 “이럴 때 AI가 제안의 표준화의 역할을 한다. 편의성 제고와 제안의 표준화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고 짚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 덕에 김 그룹장이 취임한 지 1년 반 만에 VIP 손님이 평균 11% 늘었다. 자산 규모 별로 보면 △1억 원 이상 14% △10억 원 이상 13% △30억 원 이상 11% △100억 원 이상 6% 증가했다.
김 그룹장에게 홍콩에서의 4년은 전환점이다. 그는 2016년 홍콩지점에서 골드 PB로 근무했다. 당시 체력적으로도, 역량 면에서도 피로감이 있었을 때였다. 그는 “외부에서 우리나라 PB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였다”면서 “홍콩 PB의 경우 우리보다 고객에 대한 질문이 더 복잡하다. 고객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노력이 잘 돼 있다. 훨씬 많은 종류의 상품을 팔 수 있어 파이프라인도 다양하다”고 평가했다.
해외의 유연성을 국내에 접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때 하게 됐다. 김 그룹장은 “외국의 경우 하우스가 필요 없으면 없앤다. 전문 계약직 형태로 PB를 채용하다 보니 여러 종류의 PB들을 채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면서 “새로 만들거나 없애는 것에 신중한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대신에 새로운 것을 만들었을 때 지원은 우리나라가 훨씬 적극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고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조언했다. PB 본인의 투자 원칙이나 투자 성향에 고객의 포트폴리오를 맞추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고객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 그룹장도 무조건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였던 때가 있었다. 그는 “PB 초기에는 손님이 얼마 벌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데 퍼포먼스가 곧 나의 능력인 것처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시장 중립적인 제안과 포트폴리오가 나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손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섣부른 판단에서 손님에게 일정 부분 이상의 위험을 전가하는 경우가 있다. 자금의 성격과 목적, 이후에 어느 정도의 투자가 가능한지, 어떤 부분을 바라고 요구하는지 수없이 물어봐야 한다. 개인의 기호 등 주변부의 정보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