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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은 없는 용어라는 법무부의 속내[법조팀장의 사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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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견(私見)이란 개인적 생각을 뜻합니다. 기사에는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눠 보려 합니다. 사견(邪見)은 지양하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이라는 용어는 없고, ‘재의요구권’만 있을 뿐입니다”

지난달 28일 금요일 오후 2시30분께 법무부에서 갑작스레 [법무부 대변인실에서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공지를 냈습니다.

법무부는 공지에서 “언론 기사에서 대통령의 ‘거부권’과 ‘재의요구권’이라는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어 말씀드립니다”라며 “‘거부권’이라는 용어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적법한 입법 절차인 ‘재의요구권’에 대하여 자칫 부정적인 어감을 더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 말씀드린다”고 설명했습니다.

법무부의 설명이 엄밀히 말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헌법 제53조 제2항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 폐회 중에도 또한 같다’고 쓰여 있습니다. ‘거부’라는 단어는 명시적으로 들어있지 않죠.

그렇지만 법무부 설명에 뭔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이유를 찾던 중 대학에서 헌법을 공부할 당시 이 같은 대통령의 권한을 어떤 용어로 배웠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고(故) 권영성 서울대 교수님의 ‘헌법학원론(2006)’ 987쪽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2) 法律案拒否權(법률안거부권)

(가) 法律案拒否權의 의의

A. 法律案拒否權의 개념

법률안거부권(right veto)라 함은 국회가 의결하여 정부에 이송한 法律案(법률안)에 대하여 대통령이 異議(이의)를 가질 경우에, 법률안의 확정을 저지하기 위하여 이 법률안을 국회의 재의(再議)에 붙일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이를 法律案 再議要求權(법률안 재의요구권)이라고도 한다. (생략)

B. 法律案拒否權의 제도적 의의

(나) 法律案拒否權의 법적 성격

(다) 法律案拒否權의 행사 요건

(라) 法律案拒否權의 유형

권 교수님의 교과서는 헌법 53조2항의 대통령의 권한을 아예 ‘법률안 거부권’이라는 용어로 정의해 설명하고, 부차적으로 ‘재의요구권’이라고 하기도 한다고 덧붙입니다. 혹시나 권 교수님만의 독창적인 단어 창조일까 해 다른 교과서들도 찾아봤습니다.

성낙인·정종섭 서울대 교수님, 한수웅 중앙대 교수님, 이준일 고려대 교수님, 이병훈 전주대 교수님 등의 교과서에도 모두 ‘법률안 거부권’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학계에서도, 실무에서도 모두 법률안 거부권이라고 수십 년을 사용했던 용어를 왜 법무부는 이제서야 ‘교정’하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다시 행사할 것이 매우 유력한 가운데 ‘거부권’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을 어떻게든 다른 단어로 대체해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입니다.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번 정부 들어 15번째 거부권 행사입니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지난해 6월 김명수 대법원장은 7월 퇴임하는 조재연, 박정화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8명 중 2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언론에서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윤 대통령이 ‘김 대법원장이 제청할 것으로 보이는 대법관 2명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당시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정계선 부장판사와, 채용 비리 의혹에 휩싸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관위원이었던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가 후보로 올랐는데, 법원 안팎에서는 이 기사를 두고 대법원장이 두 후보를 아예 제청 고려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대통령실의 ‘사전 엄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상 없는 권한입니다. 헌법 제104조 2항에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습니다. 대법원장의 제청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은 명시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장은 제청권을, 대통령은 임명권만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협의를 거쳐 대법관을 정합니다. 헌법을 그대로 해석하면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장 제청→국회 동의→대통령 임명’ 순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에 동의를 얻었는데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을 경우 상당 기간 대법관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협의를 거치는 것입니다.

대법원과 대통령실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대면해 최종 조율 절차를 거칩니다. 대통령이 반대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대법관으로 제청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가 ‘현재 대법관의 인적 구성이 특정 이념 성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현재 대법원의 권위가 추락했다’는 등 사법부를 비난하며 특정 후보가 제청될 경우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겠다고 대놓고 언론에 이야기한 것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삼권분립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헌법 문언상 있지도 않은 ‘대법관 제청권에 대한 거부권’을 이야기한 정부가 갑자기 1년 뒤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예정된 상황에서, 학계와 실무에서 널리 쓰이던 ‘법률안 거부권’이라는 용어가 사실 헌법에는 없고 ‘재의요구권’만 있을 뿐이라고 하면 누가 그 말에 동의할까요.

어떠한 기준을 자신한테는 관대하게, 남에게는 엄격하게 적용할 때를 우리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합니다.

머니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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