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익 단편 ‘비 오는 길'(1936년), 손창섭 단편 ‘비 오는 날'(1953년), 그리고 윤흥길 중편 ‘장마'(1973년). 장맛비 소리는 대개 황량하다. “빗소리는 여운이 없이 무겁게 들렸다”(‘비 오는 길’)거나 “후드득 후드득 유리 없는 창문으로 들이치는 빗소리”(‘비 오는 날’)라거나 “꺼끔해졌다 되거세어지는 장맛비가 소리를 지르면서 두텁디두텁게 깔리고 또 깔렸다”(‘장마’)는 표현들이 눈에 띈다. 비가 계속 내리면 마음도 가라앉는다. 들리는 빗소리가 그저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는 까닭이다.
비 오는 날엔 안에서 밖의 비를 감상하는 게 제일이다. 설령 보기에 좋은 비라도 맞기엔 거추장스러우니까. 우산이 있어도, 우산이 없어도 그렇다. 비 오는 날 하기 좋은 독서를 했다. 단편이고 중편이니 길이가 짧은 덕에 한 자리에서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거듭 옮겨가며 주욱 읽었다.
읽고 있는 이야기 안에서도 비가 내리니 현실감이 고조됐다. 세 작품 모두 장마철이다. 책 속에는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사람도 있고, 불행 앞에서 무력한 사람도 있고, 역사에 상처 입은 사람들도 있다. 저마다 얘기는 달라도 오롯이 편입될 수 있는 정조가 있다면 비애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과 서러움 같은 게 있다. 소설 속 장마는 그 슬픔과 서러움을 증폭시킨다. 오랜 비는 우울하고 구질구질하고 사람들을 지쳐버리게 한다.
우연찮게 확인한 건 장마를 묘사하는 공통된 형용사였다. 세 작품 모두에서 장마는 ‘지루한 것’이었다. “피곤한 병일이는 사무실에서 돌아올 때마다 이 지루한 장마는 언제까지나 계속할 셈인가 하고 중얼거렸다”(‘비 오는 길’), “원구가 얻어 있는 방도 지루한 비에 습기로 눅눅해졌다”(‘비 오는 날’), “어차피 바깥출입을 못하도록 발이 묶여 있는 나한테 지루한 장마의 계속이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느껴질 경우가 어쩌다 있었다”(‘장마’). 그렇지, 비가 오랫동안 계속 내리면 지루하다.
삶에는 한여름 장마철 같은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우산을 받아도 줄기차게 퍼붓는 비에 옷깃이 젖고, 질퍽한 빗길에 발걸음이 무겁고, 때로는 아예 길을 나설 엄두조차 나지 않는 때. 소설 속 장마는 지루하게 계속되는 고된 시기의 은유일 것이다. 사실적 인물들은 수십 일째 계속되는 비로 장사를 망치거나, 집 안에 갇히거나, 비를 피해 어딘가로 들어가거나, 비가 그치기를 속절없이 기다린다. 그들은 지루하다. 하지만 내리는 비를 멈출 수는 없다. 비가 내릴 때 주어지는 선택지는 그저 두 가지다. 맞든지, 피하든지. 비 오는 날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러니 날씨에 맞게 구하자, 지루한 시기를 건너는 방법을. 분명한 건 비는 결국 그치고, 우리는 언젠가 그 시절을 회상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장마’ 마지막 문장)식으로라도.
조민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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