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우리 가족 첫 유럽 여행은 2007년 여름이었다. 런던으로 들어가 뮌헨, 프라하, 비엔나, 베네치아, 로마, 파리를 돌고, 상하이를 거쳐 들어오는 여정이었다.
네 식구가 함께 한 달 남짓 여행하다 보니 여비 부담이 막심했다. 그래서 돈을 아끼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중 맨 먼저 숙박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런던과 로마에서는 한인 민박에서 묵었다. 뮌헨과 비엔나에서는 유스호스텔을 이용했다. 프라하와 베네치아, 파리에서 겨우 호텔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늘은 그중에서 유스호스텔에서 겪은 일을 적어볼까 한다.
뮌헨에서 묵은 유스호스텔은 하우프트반호프(중앙역)에서 가까웠다. 여행자가 많이 찾는 곳인지 위치도 좋아 찾기 쉬웠다. 자유 여행자에게 그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숙소라면 10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방은 널찍하고 화사했으며, 침구는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었다. 그러니 어설픈 호텔보다 더 나았다. 문제는 8인실인 방을 남녀가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어야 했다. 예약할 때, 우리 가족이 함께 방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8인실 혼숙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다가, 방에 도착하여 건장한 청년들이 웃통을 벗어부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여덟 명이 쓰는 그 방에 여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남편과 나, 두 아들이고, 나머지 네 명은 젊은 청년들이었으니까.
그들은 동양에서 온 아줌마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이 저희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심지어 샤워를 마치고 나서는 수건으로 중요한 부분만 살짝 가린 채 방 안을 돌아다니니, 눈 둘 데 없는 나만 죽을 노릇이었다.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는 청년들이었지만, 내 마음은 밤에 잠을 잘 때 편하지 않았다. 유스호스텔이 그런 곳일 줄 알았다면, 다른 곳에서 돈을 아끼더라도 절대 도미토리는 예약하지 않았을 거라고 수없이 투덜댔다. 그건 진심이었다.
비엔나 숙소는 찾아가기도 어렵고, 방 상태도 뮌헨보다 훨씬 열악했다. 좁은 방에 2층 침대 4개가 옹기종기 놓여 있어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젊은 처자들과 함께 방을 썼다.
뮌헨에서 거북살스러운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이 횡액을 만난 셈이 되었다. 워낙 낯가림을 하는 데다가 살짝 옛 선비의 점잖은 풍모를 지닌 그는 과년한 처자들과 함께 방을 써야 하는 현실에 무척 난감해했다. 게다가 그 처자들이 훌렁훌렁 옷 갈아입는 걸 보아야 하니, 오죽 민망하였으랴. 그로서는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방에서 자는 것이 차라리 나았겠다.
어느 여행작가 글을 읽다 보니, 유럽 유스호스텔에서는 남녀 간 진한 애정 행각도 더러 벌어지는 모양이던데, 천만다행히도 그런 망측한 일은 보지 않았으니 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때 우리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행 중이었으니 말이다.
남편은 그 뒤로 “유스호스텔에서 묵어야 한다면 천당이라도 안 간다”고 버틴다. 허름한 숙소일지라도, 우리 가족끼리 쓰는 방을 고집한다.
그의 까탈스러운 취향이 마음에 안 들다가도, ‘다시 남자들과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좋겠는가?’ 자문하면 답이 금방 나온다. 나 역시 그건 죽어도 싫다. 부부는 이래서 함께 사는가 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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