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두고 4일 삼성전자 투자자는 웃고, SK하이닉스 투자자는 울었다. 올해 들어 전날까지 HBM 선두 업체인 SK하이닉스 주가가 68% 넘게 뛰는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채 5%도 오르지 못했던 것과 다른 양상이다.
삼성전자 주식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8만4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가가 전날보다 3.42%(2800원) 오르면서 지난 4월 이후 3개월 만에 8만4000원 고지를 밟았다. 시가총액도 하루 새 16조7150억원 불어나 500조원대를 되찾았다.
SK하이닉스는 상황이 반대였다. 주가가 전날보다 2.54%(6000원) 내리면서 시가총액 4조3680억원이 증발했다. SK하이닉스 거래액은 1조7470억원에 달했다. SK하이닉스가 하루 최대 거래대금(1조9370억원) 기록을 세운 2021년 8월 이후 최대치다.
두 종목 시가총액 21조원가량을 움직인 것은 이른바 ‘HBM 공급설’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5세대 HBM인 HBM3E를 납품하기 위한 퀄테스트(최종 신뢰성 평가)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이날 오전 나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기대감은 꺼지지 않았다. HBM 시장 선두 업체인 SK하이닉스 투자자들은 경쟁 업체가 곧 등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HBM3E 공급 일정이 지연되고 있으나, 결국 납품에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석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삼성전자 HBM3E 퀄테스트 결과가 8단은 올해 3분기, 12단은 올해 4분기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2025년부터 삼성전자의 HBM3E 공급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했다.
송재혁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사장)도 전날 제22회 국제 나노기술심포지엄 및 융합 전시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HBM 품질 테스트와 관련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오는 5일 올해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뒤 컨퍼런스콜을 통해 엔비디아 퀄테스트 관련 정보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더 명확한 (HBM 납품) 스케줄이 공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퀄테스트가 지연되더라도 (주가에) 반영된 기대가 크지 않아 주가 조정은 제한적일 것이고, 오히려 (납품) 가능성에 따른 업사이드(상승 여력)가 열려있는 구간”이라고 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30.93포인트(1.11%) 오른 2824.94로 장을 마감했다. 2022년 1월 이후 최고가를 찍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기관이 1조1129억원 넘게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기관이 유가증권시장 주식을 1조원 이상 순매수한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외국인도 3216억원 매수 우위를 보이며 힘을 보탰다. 개인만 1조4145억원 순매도했다.
기관은 삼성전자 주식을 5880억원어치 사들였다. SK하이닉스 주식도 550억원 순매수했다. 이밖에 ▲삼성생명 290억원 ▲신한지주 280억원 ▲삼성증권 260억원 ▲KB금융 220억원 등도 기관 순매수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전날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세제 지원안을 발표하면서 수혜주로 꼽히는 종목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LG에너지솔루션, 현대차, 기아, 셀트리온, POSCO홀딩스 등이 전날보다 주가가 올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약세였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4.71포인트(0.56%) 오른 840.81로 장을 마쳤다. 지난 1일 이후 3거래일 만에 840선을 회복했다. 코스닥시장에서 외국인이 장 후반 ‘사자’로 돌아선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206억원, 53억원 순매수했다. 기관은 214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에코프로와 HLB, 엔켐, 리노공업, HPSP 등이 전날보다 높은 주가로 거래를 마쳤다. 에코프로비엠, 알테오젠, 셀트리온제약 등은 하락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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