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벤처 생태계 자체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1조2000억원 넘는 운용 자산을 갖춘 벤처캐피털(VC) LB인베스트먼트에서 바이오벤처 투자를 담당하는 오승윤 상무는 최근 조선비즈와 만나 “신약 개발과 진단으로 바이오벤처를 한정하지 않으면 바이오벤처 시장에서 투자할 곳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 상무는 “국내 바이오벤처는 과거 신약 개발에만 집중하던 것을 넘어 신약 개발에 필요한 첨단 장비를 만드는 사업으로까지 속속 손을 뻗고 있다”면서 “특히 이들 바이오벤처는 해외에서 먼저 기술력을 인정받는 등 수익 기반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LB인베스트먼트는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바이오 투자 위축에도 바이오·의료 부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18억원을 투자했다. 작년 연간 130억원을 투자한 것을 고려하면 ‘시계열 기준’ 약 2배로 증가했다.
오 상무는 “LB인베스트먼트는 블라인드펀드 중심 운용으로 바이오 전용 펀드는 없지만, 매년 전체 투자액의 약 20%를 바이오와 의료 부문에 집행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면서 “작년 벤처투자액 자체가 줄면서 바이오벤처 투자도 줄었지만, 올해는 전년보다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동물생명공학 전공한 후 생물정보학 석사를 지낸 오 상무는 한국P&G를 거쳐 2012년 바이오·의료 부문 심사역으로 벤처투자 시장에 입문했다. 이후 2014년 LB인베스트먼트로 이동, 바이오 장비 업체로까지 투자 영역을 확장했다. 생체현미경 개발 기업 아이빔테크놀로지 발굴이 대표적 사례다.
오 상무는 “2017년 회사 설립과 동시에 투자한 아이빔테크놀로지는 신약 개발용 장비 판매로 작년에만 45억원 매출을 낸, 이른바 ‘돈 버는’ 바이오텍으로 자리매김했다”면서 “국내 바이오산업이 성장하면서 기술융합 바이오벤처 영역도 초기 단계지만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기술융합 바이오벤처라는 용어가 낯설다.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가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혁신 생명공학 장비 기업을 일컫는다. 가령 시각화가 불가능했던 세포 간 상호작용, 약물 반응을 즉각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하거나 측정할 수 없었던 것들을 정량화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는 기업이 등장했다.
특히 이들 기업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상급 의료기관, 제약사 산하 연구소 등에서 제품 기술력 및 효율을 인정받으며 공급 계약을 이뤄내는 추세다. 앞으로는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에 더해 이들 첨단 장비 바이오벤처가 크게 조명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융합 바이오벤처에는 어떤 곳들이 있나?
“LB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 중에선 아이빔테크놀로지와 프로티나가 대표적이다. 우선 아이빔테크놀로지는 첨단 레이저 광학 장비 생체현미경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세포 간 상호작용, 약물 반응을 살필 수 있다는 점으로 주목받으며 해외 판매도 이뤄냈다.
프로티나는 단백질과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 분석 기술(PPI)을 보유한 바이오벤처다. 글로벌 제약사가 이미 임상용 샘플 분석에 프로티나의 PPI를 사용했고, 질병 기전 연구 분야에도 활용해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의대와 협업해 임상 유효성을 검증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그동안 기술융합 바이오벤처가 조명받진 못했던 것 같다.
“기술융합 분야는 바이오산업 생태계의 성숙도가 받쳐주어야 성장이 가능한 특징이 있다. 신약과 같은 전통 바이오산업에 필요한 기술 요소들을 파고들어 부가가치를 제공해야 하고, 상업화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고객사들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명 스몰몰레큘이라 불리는 저분자의약품 개발이 중심이 될 때만 해도 세포 간 상호작용을 실시간으로 살필 필요까진 없었지만, 항체의약품과 합하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세포치료제 등의 신규 방식이 조명을 받으면서 기술융합 바이오벤처의 필요성도 커졌다.”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의 성장이 기술융합 바이오벤처 활성화의 필수 요소가 되겠다.
“사실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맞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가파르게 금리가 올랐고, 금리가 오르자 자연스럽게 모험자본에 대한 선호도 감소했다. 안정적인 이익을 내는 사업구조를 선호하게 됐는데 바이오는 그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러나 면역항암제나 최근 비만약 블록버스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바이오는 인류 삶의 질 개선이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다. 6개월 후 회복 국면에 진입할지 혹은 1년이 더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회복할 수밖에 없는 산업군으로 본다.”
─자금난에 빠진 바이오벤처가 많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회사가 보유한 핵심 기술력이 세계 시장 기준으로 경쟁력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후 가장 경쟁력 있는 파이프라인을 선별해 집중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신약 개발은 타 산업 대비 투입 비용 조절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는 만큼 재무적 유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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