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김다민 기자]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이하 금융위)가 기술기업을 충실하게 평가하고 기술금융 본래의 취지에 맞게끔 기술금융 제도의 개편안을 마련해 이달부터 본격 시행한다.
지난 1일 금융위는 기술금융 가이드라인 및 3대 평가 매뉴얼(기술신용평가·품질심사평가·테크평가)을 이날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가이드라인 및 평가 매뉴얼은 지난 4월 금융당국이 발표한 ‘기술금융 개선방안’ 시행을 위한 후속 조치로 마련됐다. 기술금융의 취지를 살려 기술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고 질적 성장을 통해 통합여신모형 구축에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다.
먼저 기술기업을 충실히 평가할 수 있도록 기술신용평가 제도를 개선한다. 가장 눈에 띄는 개선안은 은행이 일반 병·의원 및 소매업 등과 같은 비(非) 기술기업에 대해 기술금융을 의뢰하지 못하도록 기술금융 대상을 정비하는 부분이다.
기술신용평가(TCB평가)는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기업에게 보다 좋은 조건의 금융서비스를 지원하고자 2014년 7월부터 도입된 제도다. 기업의 기술(T)과 관련된 기술성, 시장성, 사업성을 평가한 기술평가등급과 기업의 재무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한 신용평가등급(CB)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기술신용등급을 산정한다.
그러나 그간 은행들이 제도의 취지와 달리 실적을 높이기 위해 기술신용평가사에 부당한 요구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술평가에서 일정 등급 이상 평가를 받은 대출은 기술금융실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기술신용평가사도 은행으로부터 보다 많은 평가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은행의 요구에 부응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는 기술금융 대상이 아닌 비기술기업에 대해 평가 의뢰 및 기술신용평가 의뢰 시 관대한 평가결과 요청, 여러 평가사에 평가등급을 사전 문의 등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평가등급 사전 문의를 통해 은행은 평가사 중 가장 높은 평가등급을 배정하는 곳에 기술신용평가 의뢰를 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지점 평가도 정확하게 이뤄지도록 조치했다. 이번 개선안으로 은행에서 기술신용평가 의뢰 시 은행 본점에서 지점에 임의로 배정하게끔 변경해 평가사에 대한 은행 지점의 영향력을 배제했다.
아울러 금융위는 기술평가사가 공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심사 기준도 손봤다.
평가자 임의대로 관대한 평가를 하지 못하도록 제도기술신용평가 등급별 정량점수 최소 기준을 마련하고, 인공지능(AI)기술을 활용한 등급판정 가이드를 제공해 평가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품질심사평가 판정기준을 모두 점수화하는 등 품질심사 기준도 강화된다. 품질심사의 경우 판정기준을 모두 정량화했으며, 우수평가사엔 인센티브가, 미흡평가사엔 페널티가 부여된다. 이에 더해 평가사 자체적으로 평가품질을 개선하도록 은행에서 평가물량 배정 시 품질심사평과 결과를 기준으로 배정하도록 했다.
이번 개편으로 품질심사평가의 중요도가 높아진 만큼 평가의 공정성을 위한 재심의 요구권을 신설했다. 기존 3단계에서 5단계로 세분화된 평가 결과 등 추가 개선사항도 함께 마련됐다.
기술금융 본연의 취지 강화를 위해 테크평가제도도 개선해 운영한다. 구체적으로 테크평가 지표에 은행의 기술금융 우대금리 제공 정도를 신규로 추가(16점)하고 기술금융의 신용대출 배점을 확대(20→24점)하는 등 제도를 개편했다. 이를 통해 담보·매출이 부족하더라도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대출한도나 금리에서 우대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개선사항은 연구용역과 전산구축이 필요한 사항을 제외하고 모두 이날부터 시행한다. AI평가등급 가이드는 연구용역이 필요한 사항임에 따라 내년 1분기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또한 은행에 대한 테크평가는 전산구축이 우선적으로 필요해 오는 9월 이후 실적부터 평가한다.
아울러 은행 및 평가사에 대한 품질심사평가는 올해 하반기 실적에 대해 내년 상반기 평가부터 적용한다. 은행에 대한 테크평가 또한 올해 전체 실적에 대해 내년 상반기 평가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개선방안 시행으로 기술금융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기술평가와 신용평가가 결합된 통합여신모형 구축에 필요한 양질의 기술신용데이터가 축적될 것”이라며 “이외에도 금융의 질적 성장을 통해 기술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개선안 도입이 기술금융의 확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2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기술신용대출의 건수는 같은해 9월을 제외하면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4월 82만3753건에 달했던 기술신용대출 건수는 1년 새 13.31% 감소해 올 4월 71만4098건에 그쳤다. 한 달 뒤인 지난 5월 말에는 그보다 더 감소한 71만84건을 기록했다.
기술신용대출 잔액도 지난 5월 308조938억원으로 전년 동기(317조3759억원) 대비 2.92%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4월에는 327조4149억원에 달했던 것에 비해 약 19조원 가량 줄어든 규모다.
기술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은행 중 규모 및 취급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단연 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의 지난 5월 취급액은 107조2297억원으로, 공급건수는 23만8587건을 돌파했다. 전년 동기 대비 취급 건수는 1.57% 감소했으나 취급액은 3.98% 증가했다.
반면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우리·신한·하나)은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 5월 기준 4사의 기술신용대출 누적 취급액은 150조7905억원으로 전체 458조8843억원의 약 3분의 1가량 차지하고 있다. 전년 동기(162조4653억원)와 비교하면 7.19%가량 감소한 규모다. 취급건수는 같은 기간 18.57%가량의 더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기술신용대출 비교 지표 중 하나인 평가액은 다른 지표와 달리 지난해 말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평가액 지표는 2015년 6월부터 공시됐으며, 기존 중소기업 대출의 연장 및 대환, 증액을 제외한 실질적 신규 공급액을 의미한다.
지난 5월 기준 기술신용대출 총 평가액은 233조81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말(230조7812억원) 대비 3조원 이상 늘어난 규모다. 전월과 비교했을 때도 1개월 새 5300억원 이상 증가했다. 즉, 기술신용대출의 전체 잔액과 취급건수는 감소세를 보였지만 새롭게 취급하는 대출액은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의 기술금융 개편 취지에 맞춰 시스템 및 평가물량 배정 기준을 개선했다”며 “이에 더해 기술우수기업 선별 강화를 통해 해당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다민 한국금융신문 기자 dm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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