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이라면 누구나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안다. 하지만 ‘환경 보호를 위한 활동’은 어쩐지 어렵게만 느껴진다. 일단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환경 보호 캠페인이나 단체에 가입하자니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하는 부담이 따라오곤 한다.
그럼 환경 보호 활동이 하나의 취미가 된다면 어떨까. 주말마다 테니스를 치거나 좋아하는 공연을 보러 가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면 말이다.
여기 많은 사람에게 환경 보호의 즐거움을 알리고자 모임을 만든 이들이 있다. 플로깅(plogging) 동호회 ‘공크루’의 이야기다. 플로깅은 조깅하며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활동으로, 스웨덴에서 시작돼 점차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운동’과 ‘환경’을 둘 다 챙길 수 있는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빌 공(空)을 따 ‘지구를 비어내는 모임’이라는 뜻의 ‘공크루’는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플로깅 모임이다. 작년에 활동을 시작해 현재 10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하며, 서울 서초구 봉사단체로도 등록됐다. 플로깅뿐 아니라 환경에 관련된 활동이라면 언제든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팀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오후, 공크루 운영진을 만났다. 인터뷰에는 공크루의 리더이자 ‘쓰레기 요정’으로 불리는 선혜원씨와 든든한 운영팀장 박혜지씨가 함께했다. 대화를 나누기 앞서, 혜원씨와 혜지씨가 수줍게 명함을 건넸다. ‘이 명함은 재생지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이들이 ‘공크루’와 함께 친환경 쇼핑몰 ‘공가게’를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공가게’는 혜원씨와 혜지씨가 비싸게 인식된 친환경 제품을 값싼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이다. 친환경 관련 부업부터 모임까지, ‘바쁘지 않냐’라는 질문에 운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다 보니, N잡러가 됐네요”라고 답했다. 혜원씨는 현재 건설 회사의 환경사업 팀원으로, 혜지씨는 프리랜서 온라인 MD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공가게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혜원씨는 환경 단체 ‘지구를 닦는 사람들(와이퍼스)’을 통해 플로깅을 처음 알게 됐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던 혜원씨에게 ‘좋은 사람들과 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고.
어린 시절 친구였던 혜지씨는 이런 혜원씨의 ‘환경 사랑’을 보증했다. “초등학생때부터 길에 있는 담배꽁초를 줍고 다니는 친구였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무를 심으러 다닐 정도로, 늘 한결같이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죠. 이런 친구와 함께 플로깅을 하다 보니 저도 자연스레 환경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후 혜원씨는 플로깅 모임에 종종 참여하며 직장인 커뮤니티에 자세한 후기를 남겼다. 그러자 직접 모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잇달았고, 혜원씨는 용기를 내 플로깅 모임을 위한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첫 모임은 단 4명이서 시작했지만, 높은 재참석률을 기반으로 규모가 꾸준히 커졌다. 현재 오픈 채팅방엔 약 100여 명이 모여있다.
공크루는 특별한 가입 조건이 없다. 그저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이면 모두 환영이다. 처음엔 2030 직장인을 중심으로 모임이 운영됐지만, 지금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플로깅은 회원들이 정해진 장소에 모여, 명단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운영진이 생분해 봉투와 장갑, 집게 등 플로깅 준비물을 나눠준다. 처음 플로깅을 위해 모인 회원들을 위해 간단한 교육도 빼놓지 않는다.
“저희가 서초구 봉사단체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오시는 분들에게 봉사 시간을 등록해 드릴 수 있거든요. 그리고 간단한 주의 사항과 플로깅 팁도 전달드리죠. 예를 들면, 처음 플로깅을 하시는 분들이 허리만 숙여 쓰레기를 주우시는데, 꼭 무릎까지 굽히라고 말씀드려요. 다음날 허리가 아프지 않게요.”
함께 플로깅을 마친 후에는 휴대용 저울에 쓰레기 무게를 잰다. 오늘 주운 쓰레기 무게를 확인하면 ‘뿌듯함이 배가 된다’는 것이 혜원씨의 설명이다.
공크루가 여러 플로깅 동호회와 차별점이 있다면, 도시 플로깅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론 자차로 1시간이 소요되는 바다까지 플로깅 무대로 삼는다. 물론 해양 플로깅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노력이 필요하다. 부표 등 큰 부피의 해양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관련 구청에 사전 협조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바닷가에서 플로깅 활동을 계획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 왔던 회원들이 재밌다고 하시고, 재참석률도 높았어요. 도시 플로깅은 대부분 담배꽁초 등 자잘한 쓰레기가 많지만, 해양 플로깅은 쓰레기가 크니까 쾌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 종목의 쓰레기만 모으는 활동도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인천 을왕리 바닷가에서 폭죽 탄피를 주었던 일이 그 예다.
“원래 해변에서는 폭죽을 터트리면 안 되거든요. 미세플라스틱인 파편이 바다로 튀게 되면서, 환경에 정말 안 좋아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함께 탄피를 주우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어요.”
공크루 운영진은 회원들의 꾸준하고 즐거운 활동을 위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가끔은 다른 단체에 나가 새로운 활동에 대한 영감을 받기도 한다.
“다른 단체에서 빗물받이 아트윅’을 하시는 걸 봤어요. 빗물받이 아트윅은 천연물감으로 하수구 주변에 그림을 그리는 활동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빗물받이에 꽁초를 정말 많이 버리거든요. 왜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는지, 여기에 버릴 경우 바다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예쁜 그림으로 일깨워주는 거죠. 그림은 천연물감으로 그리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자연스레 지워집니다”
평소 입지 않는 옷을 서로 교환하는 ‘21% 의류 파티’를 열기도 했다. 여기서 21%의 수치는 ‘개인이 사놓고 입지 않은 옷의 비율’을 가리킨다.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면서, 의류 패기 문제가 심각해졌거든요. 그래서 각자 집에서 옷을 가져와 교환했는데, 많은 회원들이 재밌게 참여해 주셨어요.”
공크루 운영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 모임 활동은 ‘플로깅’ 자체보다 함께한 ‘사람들’에서 나온다. 혜지씨는 “조카랑 함께 모임에 나간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조카가 평소에서도 담배꽁초를 알아서 줍는거예요. 그때 보람을 느꼈죠”라고 회상했다.
혜원씨는 “모임에 처음 나왔던 분이 계속해서 나와주실 때 제일 뿌듯해요. 플로깅을 하는 저희를 보신 행인 분들이 기특하다며 간식을 쥐여주고 갈 때도 그렇고요. 무얼 바라고 한게 아닌데, 좋게 봐주셔 감사하더라고요.”
문득 공크루가 이렇게 환경에 진심인 이유가 궁금해졌다.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지구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순 있지만, 개인적인 삶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을까.
혜원 씨는 플로깅이 ‘소비’를 감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자신했다. “플로깅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이 쓰레기가 어디서 왔는지 관심이 확장되는데요. 다양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소비를 줄이게 됩니다. 가까운 예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카페에서 음료를 활인 받을 수 있잖아요. 지구를 지키다보면 지갑도 지키게 되는 거죠.”
앞으로 공크루의 계획도 물었다. “플로깅 모임에선 한여름과 한겨울을 비수기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7~8월은 잠시 쉬고, 선선해지면 폭죽 탄피 줍기 활동과 나무 심기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노을 공원 폐기물 매립지 공원에서 나무를 심는 모임에 단체 신청을 하는 방식으로요! 환경에 도움이 되는 다양하고 재밌는 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양한 환경 활동을 계획 중이라는 공크루 운영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환경 활동을 어렵게 느껴 주저하는 이들을 독려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환경을 위한 활동을 ‘같이’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바다 구경 간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모임에 참석해 보세요!”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