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원들이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국내 금융소비자는 예금을 맡긴 금융회사가 영업을 중단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예금보험공사로부터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한도는 2001년 이후 24년째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쳐 5000만원으로 묶여 있다. 지난해 금융 당국이 ‘현행 한도 유지’로 결론을 내린 사안이지만, 정치권발(發)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6일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인당 1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예금보험위원회가 5년마다 의결을 통해 금융 업종별로 보험금 지급 한도를 정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 25일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도 핵심은 같다. 이 개정안도 마찬가지로 금융 업종별로 보험금 한도를 차등 적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업종별 차등 한도’를 뒀다는 점에서 앞선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과는 차이가 있다.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 논의가 거듭 좌초한 것은 2금융권으로의 자금 쏠림 우려 때문이었다. 모든 업무권역의 예금자 보호 한도가 1억원으로 오르면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주는 저축은행과 농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에 돈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금융사들이 취급하는 대출 절반가량이 부실 위험이 큰 업종에 쏠려 있어 위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의 지난해 3분기 말 건설·부동산업 대출 비중은 각각 50%, 46.8%다. 반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인낸싱(PF) 대출 연체율은 5.56%, 4.18%로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한 방안이 차등 한도 적용이다. 미국 등 선진국도 업권별로 보호 한도에 차등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은행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25만달러(약 3억4500만원)인데, 생명보험사의 보호 한도는 10만~50만달러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모든 업무권역의 예금자 보호 한도를 동일한 수준으로 상향하는 것은 금융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은행의 보호 한도는 상향하되, 저축은행·상호금융 등의 한도는 유지하는 게 합리적이다”라고 했다.
금융 당국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지난 2년여에 걸쳐 마무리 지은 사안을 다시 원점에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예보는 2022년 3월 민관 합동 예금자 보호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린 후 업무권역별 논의와 외부 연구용역을 거쳐 현행 유지로 최종 결론을 냈다.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이런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금융위는 당시 보고서에서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의 편익은 소수 5000만원 초과 예금자(1.9%)에만 국한될 수 있다”고 했다. 또 “금융사가 예보에 내는 예금보험료는 최대 27.3% 상승한다”며 “예보료가 인상돼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금융사가 대출금리 인상 등을 통해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위가 우려하는 내용 중 일부는 업무권역별 차등 한도 적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여야 이견이 없는 안건인 만큼 올해 안에 예금자보호제도 개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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