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세타가야구와 40년 넘게 도농교류…연 250만 명 찾는 농업+관광 융합 마을로
마을 기업 ‘전원플라자’ 운영으로 연 270억 원 매출
“1박 하는 만큼 쓰레기 나와”…내국인 당일 관광 집중
한국도 3월 ‘농촌 소멸 대응 추진 전략’ 발표하고 농촌 살리기 나서
송미령 장관 “가와바, 성공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우리도 성공 모델 찾아야”
물감을 쏟은 듯한 그림 같은 푸른 하늘. 6월 말임에도 뜨겁지 않고 포근한 햇살. 습기를 머금지 않은 가볍고 시원한 바람. 귀를 괴롭히는 소음은 전혀 찾을 수 없는 평안함. 풀 내음 가득한 싱그러운 향기. 서두름이란 단어는 아예 없는 듯한 사람들의 여유로움.
26일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군마현의 ‘가와바무라(川場村)’에서 느낀 오감과 감정이다.
연간 방문객이 250만 명에 달하는 농업과 관광이 융합된 일본의 대표 농촌 소멸 극복 마을치고는 평일임을 고려해도 고즈넉함까지 묻어날 정도로 평화로웠다.
방문객 수 기준 지난해 한국의 10위 관광지인 충북 도담삼봉이 286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눈에 확 띄는 천연 관광자원이 없음에도 이토록 농촌다움을 유지하면서 250만 명의 방문객을 모을 수 있음에 감탄했다.
농촌 소멸 위기를 극복한 일본의 농촌 활성화 사례를 파악하고 도시와 농촌이 더불어 사는 정책 현장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가와바였으나, 개발과 보전의 중용과 만족의 미덕에 더 관심이 갔다.
도쿄에서 130㎞ 떨어져 있는 가와바는 85.25㎢ 면적 중 산림 면적이 83%를 차지하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전체 인구는 2020년 기준 3147명에 불과하다. 고령화율이 40.7%에 달해 초고령화 마을이며, 1971년부터 인구 소멸 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듬해인 1972년 주민투표를 통한 마을 독자 생존안을 결의하고, ‘농업+관광’ 정책 방향을 설정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몇 번의 위기도 있었으나 오늘에 이르렀다.
가와바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도농 교류를 꼽을 수 있다.
츠노다 케이이치 가와바 부촌장은 “이 마을이 통폐합 위기에서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도쿄 세타가야구와의 교류 덕분”이라며 “세타가야 주민이 (가와바의) 전원 풍경을 유지해달라는 요구가 있어서 행정 단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유지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와바는 1979년 도쿄의 세타가야구의 ‘제2의 고향’ 프로젝트에 관동 7개 도현 및 52개 시읍면과 경쟁해 도농교류 마을로 선정, 40년 넘게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와바는 세타가야구 주민이 직접 농산물 수확 작업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과실나무를 임대해 관리하도록 하고, 또 세타가야 61개 초등학교의 학생은 2박3일의 가와바 농촌 마을 체험이 정규교육으로 들어가 의무화돼 있다.
세타가야구는 주중에는 초등학생이 농촌 체험 투어를 할 수 있고, 주말에는 구민이 휴양하는 시설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가와바에 40억 원가량의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세타가야와 가와바의 도농교류가 이토록 오래 이어질 수 있는 것은 행정 정책으로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츠노다 부촌장은 “세타가야 구청장도 선거제이므로 구청장이 계속 바뀌지만 1970년대에 마음의 고향을 만든다는 조례가 생겨 청장이 바뀌는 것과 상관없이 이를 따르게 되어 있다”라며 “교류를 계속해야 하는 행정 정책 덕분에 (관계가) 유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와봐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마을기업인 ‘전원플라자’ 사업의 성공이다.
전원플라자는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고 직접적으로 농가 소득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된다. 외지인이 많이 오면 환경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외지인이 흩어져서 쓰레기를 뿌리지 않고 모여서 농산물을 사 갈 수 있게끔 마을 중심부에 31억 엔의 비용으로 건물을 짓고, 마을 기업을 만들었다.
이는 완전한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해 250만 명의 외지인을 상대로 900세대의 농가가 직접 자기 농산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매장 현황은 식음료 및 판매소 19곳, 제조 3곳, 숙박 1곳 등으로 구성됐다. 농산물 판매 매장인 파머스 마켓의 매출만 연 90억 원에 달하며 전체 매출은 연간 270억 원 수준이다.
특히 일본 전역의 ‘길의 역(휴게소)’ 1450개 시설 중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놀라운 점은 재방문율이 60% 이상으로, 10회 이상 방문객만도 28.1%에 달한다.
궁금했다. 250만 명의 방문객과 100억 원에 가까운 농산물 매출이면 즐길 거리와 숙박시설을 더 늘리고, 온라인 쇼핑몰까지 운영하면 훨씬 더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이에 대해 윤기확 가와바 코리아 대표는 “관광객이 몰리면 소음과 쓰레기, 생활 터전 침해 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가와바 마을은 전원플라자를 만들었고, 1박을 하지 않는 관광구조 역시 그 때문”이라며 “전원의 느낌을 줄 수 있는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 골프장과 스키장, 태양광 발전소 등은 마을에서 들어서는 것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와바는 250만 명의 방문객이 최대치라고 보고 있다. 100만 명의 군마현 도시나 도쿄 정도가 가와바의 배후 도시인데 거기서 안정적으로 재방문율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한국이나 필리핀 등 외국에서 관광 오기를 바라지 않고, 주민들도 이 때문에 생길 문제를 우려해 내국인 중심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쇼핑몰이 없는 것에 대해선 이미 전원플라자 등을 통해 판로가 확보된 상황에서 억지로 생산을 늘려 많이 파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무조건적인 개발보다는 환경과 주민 생활·편의 향상을 기본에 두고 안정적 소득 수준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가와바는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한 출산 지원 및 해외 연수 지원 등 복지 사업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도 농촌 소멸에 대응하고, 농업·농촌의 새로운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3월 ‘농촌소멸 대응 추진전략’ 발표, 대대적인 농촌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청년 농업인과 농촌형 창업가를 대상으로 자금과 보금자리주택을 지원하고 경제 활동을 활성화한다. 또 농촌 소멸 대응 특별위원회를 가동해 소멸 위험 지역에 ‘농촌형 기회발전특구’를 도입해 규제 완화 등 혜택을 주고 산지전용 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농촌 지역별로 소멸 위험도를 세분화해 ‘맞춤형’ 지원도 추진 중이다.
특히 우리 역시 국민 모두에게 열린 살고, 일하고, 쉬는 새로운 농촌을 만들기 위해 정주, 창업, 휴양의 공간으로서 농촌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가와바 마을의 성공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으로 세타가야구와의 도농교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마을 기업의 수입은 마을의 미래 인프라를 위해 재투자하는 선순환”이라며 “가와바 마을의 성공 사례가 모든 농촌 마을에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농촌 마을도 각자 특색있는 자원을 활용해 도시와 함께 지속 가능한 성공 모델을 찾을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농촌소멸대응 대책을 통해 근간 정주 인구 확대 중심의 정책에서 관계 인구 및 생활 인구 확대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을 선언하고, 7월 7일을 도농교류의 날로 지정해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