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차 시동을 걸자마자 폰을 열어 노래를 튼다. 플레이리스트명 ‘찰리’. 내 기타 이름이다. 그동안 내가 배우다 만, 더 정확히는 실패한 곡들이 담겨 있다.
영화 <머니볼> OST ‘The Show’, 왬!의 ‘Last Christmas’, 마룬5 ‘Sunday Morning’, 레이지본 ‘어기여차’… 여기에 최근엔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의 OST ‘A Whole New World’, <토이 스토리>의 ‘You’ve Got a Friend in Me’가 추가됐다.
찰리 플레이 리스트에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주로 담겨 있는데, 그래도 기타로 좀 뚱땅거려봤다고 좀 더 분석적으로(?) 들으니 느낌이 다르다. 기타 선생님이 일러준 코드를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이 곡을 주야장천 듣다 보면 불현듯 기타를 잘 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하기도 한다.
사실 다른 속셈도 있다. 에라 모르겠다, 기타로 연주를 못 할 바엔 노래라도 부르자! 그간 기타가 뜻대로 안 되어서 답답했던 울분을 한껏 담아 노래를 부른다. 차 안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 밖 누가 볼 것도 아니니 목청껏 부른다.
일 년 반 넘게 기타를 배우면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따로 뮤직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운전 중 듣고 따라 부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무엇보다 부지런해졌다.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는 기타 연습을 할 수 없으니, 낮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게 됐다. 혼자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느슨해지는 때가 많은데, 요즘은 그럴 틈이 없다.
오전 업무를 어느 정도 마치면 바로 기타 연습에 돌입한다. 30분 정도 연습하고 나면 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업무 시작. 서너 시간 정도 앉아 있었다 싶으면 다시 기타를 든다. 이때 연습은 좀 더 길다. 이어 남은 업무를 다시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문다.
지독히도 늘지 않는 기타 실력 탓에 속상한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한 덕분에 최근엔 레슨 중 기타 선생님 칭찬도 여러 번 들었다. 원래 칭찬에 박한 분인데도 말이다. 레슨이 끝나고 나면 나조차도 ‘아, 나 좀 늘었나?!’ 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겨 연습을 더 하게 된다. 한정된 낮 시간에 기타 연습 시간을 늘리니 일하는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 ‘자, 시간이 얼마 없어. 집중해!’ 한다. 업무 효율이 좋아졌다고나 할까. 원래 게으르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인데, 오늘 계획한 업무와 기타 연습을 완수하고 잠자리에 들면 세상 뿌듯하다.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니. 기타를 배우지 않았으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다. 새삼 또 기타 배우기를 잘했다 싶다. 그런데 선생님도 날 보며 기타 가르치기를 잘했다 싶을까. 기타는 완전 꽝인데, 초장에 도망갔어야 했는데 생각하면 어쩌지….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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