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뉴스1) 권혁준 기자 = 1점 차 승부의 9회말 1사 1, 3루. 마운드엔 한미일 통산 546세이브에 빛나는 ‘살아있는 전설’ 오승환(삼성)이, 타석엔 1군 통산 42안타에 불과한 홍현빈(KT)이 들어섰다.
대타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KT 벤치는 밀어붙였고, 그 선택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무명’에 가까운 백업 선수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KT는 28일 경기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삼성과의 경기에서 3-4로 뒤지던 9회말 1사 1, 3루에서 나온 홍현빈의 끝내기 2타점 3루타에 힘입어 5-4 대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KT는 경기 초반 일방적으로 끌려갔다. 6회까지 상대 선발 데니 레예스에 단 2안타만 치는 데 그치며 0-4로 뒤졌다. 한 달 만에 만난 ‘옛 동료’ 박병호가 홈런을 포함한 멀티히트, 도루 등으로 펄펄 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썩 달갑진 않았다.
그러나 7회말 무사 만루에서 김상수의 2타점 적시타로 추격을 개시했고, 8회말엔 강백호의 솔로홈런으로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럼에도 9회말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위 타순으로 이어지는 데다, 마운드엔 올 시즌 구원 1위 오승환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는 9회말부터’였다. 선두 황재균이 2루타를 때리고 나가면서 그라운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황재균이 견제사 위기를 넘겼고, 김상수의 희생번트, 대타 강현우의 볼넷으로 1, 3루가 됐다.
타석엔 홍현빈. 2017년 입단해 올해로 프로 8년 차지만, 주전으로 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로 대수비와 대주자 등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이날 역시 8회초 대수비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KT 벤치엔 김건형과 장준원 등의 야수가 남아있었기에 홍현빈이 빠질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은 홍현빈에게 신뢰를 줬고, 홍현빈은 초구를 제대로 받아쳐 주자 2명을 모두 불러들이는 끝내기 안타를 때렸다. 끝내기 안타도, 3루타도 모두 1군 무대에서 처음 경험한 것이었다.
경기 후 만난 홍현빈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꿈만 같고 얼떨떨하다. 내가 친 게 맞나 싶을 정도”라면서 “어떻게 쳤는지 가물가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홍현빈의 노림수는 변화구였다. 상대 투수 오승환이 앞서 황재균에게 직구를 던지다 2루타를 맞았다는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직구보다는 변화구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는 제대로 적중했다. 오승환은 초구에 몸쪽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홍현빈의 스윙 궤도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홍현빈은 “높은 코스의 변화구를 예상했는데 생각대로 들어와서 좋은 타구가 나왔다”면서 “친 직후엔 ‘이거 끝났다’ 싶었고, 뛰면서도 1루 주자 (김)건형이 형이 제발 들어오기만 바라며 지켜봤다”고 돌아봤다.
이어 “사실 타석 전에 최만호 코치님의 수신호를 보고 교체되는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대주자만 바꾸는 것이었고, 다행히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에 연습하면서 타격감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자신감이 있었다”면서 “아무래도 내가 백업을 길게 했기 때문에 모두가 기대치가 없었을 것 같은데, 내가 많은 분들을 당황하게 한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프로 데뷔 이후 8년간 기록한 안타가 42개에 불과했던 홍현빈이지만, 43번째 안타는 영원히 잊지 못할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았다.
그러나 홍현빈은 크게 의미를 두기보다는 늘 하던 대로 묵묵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오늘 경기가 큰 터닝포인트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 “지난해 힘든 시간이 많았는데, 그걸 겪고 나서 묵묵히 내 모습을 보여드린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끝으로 홍현빈은 “2군에 계신 모든 코칭스태프분들, 1군 타격 코치님께 감사하다. 믿고 써주신 이강철 감독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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