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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입자치료를) 벌써 12번이나 받았는 데도 적응이 되질 않네요. ”
김모 씨(47·남)는 지난달 28일 연세암병원에서 췌장암 환자로서는 처음으로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4회씩 3주에 걸쳐 중입자를 총 12회 조사하는 일정이다. 이달 18일 마지막 회차를 채운 김씨는 “어디가 불편하거나 입맛이 없었던 것도 아니라 솔직히 (치료가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씨는 44살 때인 2021년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췌장은 명치 끝과 배꼽 사이 상복부에 위치한 소화기관의 일종이다. 각종 소화효소와 인슐린을 분비해 장내 음식물을 분해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췌장에 생긴 암세포로 이뤄진 종양 덩어리를 통틀어 췌장암이라고 부른다. 90% 이상이 췌관의 외분비 세포에서 발생하는데 몸 깊은 곳에 위치하는 췌장의 특성으로 대부분 암이 생겨도 초기 증상이 없다. 췌장암의 조기 발견율이 10% 이하로 매우 낮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앙암등록본부가 작년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15.9%로 10대 암 중 가장 낮았다. 5년 상대생존율은 암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을 추정한 값을 말한다. 2017~2021년에 췌장암이 새롭게 발견된 환자가 5년 뒤 생존해 있을 확률이 6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췌장암은 처음 진단됐을 당시의 요약 병기에 따라 생존율 차이가 크다. 암이 처음 발생한 장기를 벗어나지 않은 국한 단계일 때 생존율은 47.5%지만 주위 장기나 인접한 조직 혹은 림프절을 침범한 국소 진행 시 21.5%, 멀리 떨어진 부위로 전이됐을 경우 2.5%까지 떨어진다.
다른 고형암과 마찬가지로 췌장암도 가능하면 수술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진단 당시 췌장암 수술이 가능한 경우는 15% 내외에 불과하다. 수술이 가능해도 국소 재발율이 40~80%로 높다. 암세포 공격성이 높아 인접 장기를 따라 퍼지는 속도가 빠른 것도 췌장암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소 진행됐거나 원격 전이를 동반한 경우 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한다. 김씨는 진단 당시 종양이 복부 혈관을 둘러싸고 있어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 연세암병원에서 24차례나 항암제를 투여했지만 암이 더 진행됐다. 스텐트를 삽입해 황달 증상을 조절한 뒤 약제를 바꿔 항암치료를 지속하던 중 중입자치료를 결정했다. 작년 4월 국내 처음으로 전립선암 환자에게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연세암병원이 1년 여만에 암종을 확대하면서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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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입자 치료는 말 그대로 탄소 또는 헬륨과 같이 무거운 입자를 가속시켜 암세포를 죽인다. 연세암병원이 약 3000억 원을 투입해 들여 온 장비는 가속기(싱크트론)로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다음 고정형 또는 회전형 치료기를 통해 암세포에 에너지빔을 조사하는 방식이다. 빔이 인체를 통과할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암조직을 지나치는 순간 에너지 전달이 절정에 이르렀다가 소멸되는 ‘브래그 피그(Bragg Peak)’ 원리를 이용한다. 이러한 물리적 특성 덕분에 암 주변 정상조직에는 거의 손상을 가하지 않고 강력한 치료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1994년 중입자 치료를 시작해 가장 치료 경험이 풍부한 일본은 전립선암 외에 골연부육종, 두경부암, 폐암, 췌장암, 간암 등에 중입자 치료를 적용해 왔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은 “췌장은 위, 소장 등 방사선에 예민한 장기들에 둘러싸여 있는 데다 호흡에 따라 위치 변동이 크다”며 “고정된 상태에서 중입자를 조사하는 고정형 치료기로는 인접 장기를 피하면서 종양에만 정확하게 고선량을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센터 개소 후 1년 넘게 치료 대상을 전립선암으로 한정했던 이유다. 360도 돌아가는 회전형 치료기는 환자 특성과 종양 위치에 맞게 조사 각도를 조절하는 것은 물론 방사선량의 세밀한 분포가 가능하다. 환자의 호흡에 따라 달라지는 종양 위치를 분석해 중입자를 조사할 수도 있다. 고정형이 환자의 좌우 방향에서 조사가 가능해 전립선암에 특화됐다면 회전형은 췌장, 간, 폐와 같이 위치가 복잡한 장기에 암이 생겼을 때 적합하다. 금 교수는 “주요 혈관에 종양이 붙어있어 수술이 불가능한데 아직 원격 전이가 일어나지 않은 국소 진행성 췌장암이 중입자치료의 주요 대상”이라며 “수술 전 췌장암 주변의 미세 암세포들을 제어하고 완전 절제율을 높이기 위한 용도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방사선의학 종합연구소(QST)가 주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병기가 진행돼 수술이 불가한 췌장암 환자에게 항암제와 중입자치료를 병행했을 때 2년 국소제어율은 80%였다. 국소제어율은 치료받은 부위에서 암이 재발하지 않는 확률이다. 최근에는 중입자치료 후 2년 생존율이 56%라는 보고도 있었다. 기존 X선과 양성자 치료를 받은 췌장암 환자의 2년 생존율이 각각 30%, 30~50%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향상된 수치다. 무엇보다 치료기간이 짧고 부작용이 적어 일상으로의 복귀가 빠르다는 데 대한 만족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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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입자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질 않아 약 6000만~75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전형 치료기 가동 소식에 췌장암, 간암, 폐암 환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췌장암 대기 환자만 60명 가까이 된다. 금 센터장은 “난치암 환자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 아니겠냐”며 “항암 등 전통적인 치료법과 중입자치료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로토콜을 개발해 췌장암 치료 성적을 높이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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