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디자인’ 중요해지며 삼성전자 ‘지펠’ 냉장고 인기
‘삼성’보다 서브 브랜드 이미지 강화…“제품으로 승부한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협업도…주방 인테리어로 자리 매김
한때는 시장을 선도했던 가전 브랜드들이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어느새 새로운 브랜드가 시장에 등장한다. 시장을 흔들었던 그 브랜드들은 왜 탄생했고 왜 없어졌는지, 그 배경과 역사를 알아봤다.
1990년대 중반 당시 국내 대용량 냉장고 시장은 수입 브랜드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일반 냉장고 시장은 국산 브랜드의 출혈 경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삼성전자는 1997년 프리미엄 냉장고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최고급 브랜드 ‘지펠’을 선보였다. 지펠은 삼성전자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출시하는 가전에 ‘삼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왔으나, 지펠을 시작으로 별도의 서브 브랜드를 론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품의 품질로 승부를 보겠다는 삼성전자의 의지였다.
지펠(zipel)이라는 이름에는 ‘완벽한 품질로 지성과 명예를 중시하는 고객에게 품격 있는 생활을 약속하는 브랜드(Zero defect Intelligent Prestige Elegant Lifestyle)’라는 의미가 담겼다. ‘최고’라는 뜻의 독일어 ‘Gipfel’에서 따온 말이기도 하다.
지펠은 왼쪽이 냉동, 오른쪽이 냉장칸으로 구성됐다. 이 같은 양문형 타입은 지금은 당연한 구조이지만, 당시에는 고가 외산 제품으로 인식됐다.
지펠은 냉동실과 냉장실에 각각 냉각기를 달아 음식 냄새가 퍼지는 것을 막는 독립 냉각 방식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출시 1년 만에 국내 초대형 냉장고 시장 1위로 올라섰고, 2002년에는 영국, 독일 등 9개국에서 냉장고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지펠이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요인은 ‘디자인’이다. 이전 소비자들의 냉장고 선택 기준이 성능이었다면 1990년대 말부터 디자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양문형 냉장고에 색깔이나 패턴에 변화를 준 다양하고 화려한 지펠 시리즈가 공개됐고 주방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냉장고 도어에 원목을 채용하거나 페이즐리(paisley) 문양을 적용하는 등 다양한 컬러를 채용한 제품으로 백색 제품이 주류를 이루던 가전 시장에 ’컬러 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6년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손잡고 그의 디자인을 따온 냉장고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세계 최초로 색깔 있는 강화유리를 적용하거나, 강화유리 뒷면에 패턴을 넣는 등 ‘인테리어 지펠’로 주방 분위기를 바꿔줬다.
날로 높아지는 인기에 2006년 지펠의 국내 시장 누적 판매량 250만대를 돌파했다. 이는 2005년말 기준, 국내 총 가구수(1598만 가구·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여섯 가구 가운데 한집 꼴로 지펠을 보유한 셈이다.
인기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4개의 독립 냉각을 적용한 ‘지펠 콰트로’도 선보였다. 707리터(L)라는 대용량에 네 개의 전문 보관실마다 별도로 냉각기를 배치한 제품이다. 당시 소비자들은 식품 대량 구매가 잦고 냉동식품을 즐기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지펠 콰트로는 이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2012년 ‘상(上)냉장·하(下)냉동’ 구조의 획기적인 ‘지펠 T9000’을 출시했다. 소비자들의 냉장실과 냉동실의 평균 사용 비율이 8대 2인 만큼, 손이 닿기 쉬운 위쪽에 냉장실을 배치하고 무거운 음식류가 많은 냉동실은 아래쪽에 두는 구성이었다.
디자인도 파격적이었다. ‘냉장고=백색가전’이라는 공식을 깨고 제품 전면에 메탈 소재를 적용한 것이다. 출시 한 달 만에 1만 대 이상의 판매되며,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처럼 냉장고 시장을 뒤흔들었던 지펠은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다. 서브 브랜드를 내세우는 것에서 제조사의 이름을 강화하는 것으로 시장 유행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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