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90% 이상 점유한 음극재, K-배터리 공급망의 ‘약한 고리’
최상목 부총리, 국내 음극재 공급망 버팀목 포스코퓨처엠 찾아 현안 점검
음극재 자립화 지원에 공급망안정화법‧안정화기금 적극 활용해야
“핵심 산업 관련 품목에 대해 자립화와 다변화 계획을 세우겠다.”
“국내 제조역량을 확충하는 등 공급망 생태계를 보강하겠다.”
“공급망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고 기술보호를 강화하겠다.”
“국제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공급망 기금과 공적개발원조를 통한 협력사업을 발굴하겠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7일 제1차 공급망안정화위원회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글로벌 복합위기와 공급망 분절 상황에 대응하고, 경제안보와 공급망을 튼튼히 하기 위해 마련돼 이날부터 시행된 ‘경제 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공급망안정화법)의 추진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자원도 없고 시장도 크지 않은 우리나라에 있어 공급망 교란은 심각한 위기다. 예전처럼 자원-소재-핵심부품-제품-소비로 이어지는 국제 분업 시스템이 유지됐다면 시스템 내에서 고도의 기술력과 효율성이 필요한 지점을 파고들어 수익을 내는 한국도 큰 고민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여지를 사전에 봉쇄하려는 미국과, 그에 도전하려는 중국이라는 두 고래가 공급망 다툼을 벌이면서 그 사이에 낀 우리도 변화에 적응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탄생한 게 공급망안정화법이고, 그걸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 조직된 게 공급망안정화위원회다.
이 조직의 수장인 최상목 부총리가 ‘공급망 안정을 위한 민관 협력’을 강조하며 대표적인 예로 든 기업이 있다. 바로 포스코퓨처엠이다. 최 부총리는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첫 회의가 열리기 전인 24일 이차전지(배터리)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포스코퓨처엠 세종 음극재 공장을 찾아 이차전지 공급망 현안을 청취하고 현장을 점검했다.
국내 배터리 산업을 대표한다는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 SK온이 아닌 포스코퓨처엠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배터리 빅3가 세계 배터리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들에겐 치명적 약점이 있다. 서플라이 체인의 업스트림(상류) 고리가 끊긴다면 다운스트림(하류) 고리도 단절될 수밖에 없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이다. 이들 중 양극재와 분리막은 국내 기업들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음극재는 그렇지 못하다. 배터리 공급망의 가장 약한 고리가 음극재인 것이다.
세계 음극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곳이 하필 공급망 다툼의 한 축인 중국이다. 전세계 음극재 물량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나온다.
핵심소재 중 하나라도 독점 체제가 갖춰지면 공급자는 언제든 수요자의 목줄을 죌 수 있다. K-배터리가 아무리 잘 나가도 음극재 하나 때문에 생산을 멈추거나, 판로가 막히거나, 마진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
독점 체제는 시장 지배자가 규모의 경제와 가격 우위 등을 앞세워 경쟁자를 고사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국내에서는 포스코퓨처엠이 음극재 공급망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원료조달‧전기료‧인건비‧환경규제 등 여러 측면에서 중국 기업들에 맞서 싸우긴 역부족이다.
시장 원리에 맡겨두자는 순진한 생각은 국내 기업의 고사와 중국의 독점 체제 구축을 지켜보고만 있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자는 ‘강호의 도’는 이미 깨진 지 오래 됐다. 세계의 시장이자 하청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은 전 산업분야에 툭하면 ‘굴기’를 갖다 붙이며 ‘밸류체인 독식’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고, 세계 경제 질서를 주도하던 미국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반도체에 이어 ‘산업의 쌀’로 떠오르고 있는 배터리 산업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강력한 정부 정책의 개입은 충분한 당위성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공급망안정화법 시행과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출범, 그리고 위원회를 이끄는 최상목 부총리의 포스코퓨처엠 방문은 우리 정부가 당장 지원이 시급한 공급망의 약한 고리를 제대로 짚어냈음을 보여준다.
이제 관계법령을 제한선까지 최대한 활용하고 공급망안정화기금을 아낌없이 투입해 K-배터리가 중국에 종속되지 않도록 음극재 공급망을 튼튼히 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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