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후 2시30분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아파트 건축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성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 큰 불이 난 지 하루 만에 대형 화재 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것이다.
2020년 경기 이천 물류센터 공사현장 화재(38명 사망), 2008년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40명 사망) 등 산업 현장의 인명 피해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인재 가능성이 제기되고 중대재해처벌법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화성 공장 화재는 사망자만 23명에 달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악의 산업 재해라는 평가다.
2022년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다가 올해 1월27일부터 5인 이상 사업장에 확대 적용됐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사업주와 법인의 처벌 수위를 높였다. 산안법은 사망 사고 시 사업주를 징역 7년 이하로 처벌하는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시 경영책임자 등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중소 사업장의 유예기간 2년이 끝나 올해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최고경영자(CEO)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관리 책임자 등을 선임하며 경영 부담이 커지자 여당인 국민의힘은 중소기업 유예를 2년 추가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 22대 국회 민생법안 1호로 공표했다.
━
건설업계 “모호한 규정 변경과 시행령 개정 필요”
━
하지만 지속되는 중대재해로 인해 이 같은 규제 완화의 요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시민단체 생명안전시민넷 관계자는 “50인 미만 사업장이라 해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3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며 “재유예를 주장하는 건 안전을 뒤로 하고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발전한 한국이 가장 뒤떨어진 분야가 생명·안전”이라며 “시대 흐름을 따라 생명을 우선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음에도 기업만이 기존에 해왔던 대로 고수하고 있다.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기업 이익 창출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회 공동선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금리 장기화와 공사비 상승 등을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지속 유예를 주장해온 건설업계는 최근 “시행령 개정이라도 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인력·예산 부족으로 법률 대응 준비에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며 “법보다 시행령을 먼저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은 사업의 특성과 규모를 고려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마련토록 해야 하겠지만 시행령은 업체 규모와 관계없이 일률 적용으로 돼 있다”며 “시행령에 있는 13개 이행 조건을 대·중·소업체 규모별로 차등화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관련 법령에 모호한 표현이 많아 부담이 크다. 조문이 명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포괄적인 중대재해처벌법을 실효성 있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질적으로 명확한 규정을 담고 있지 않다”면서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들은 안전관리체계를 갖추기가 상당히 어렵다. 현실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 책임만 지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의 요건들을 제시하고 안전관리체계를 표준화해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