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교전 중인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무차별 폭격하며 일종의 ‘완충지대’를 조성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국경 지역의 헤즈볼라 거점만 공격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민간 주택까지 의도적으로 파괴하며 거주 불능 지역으로 만드려는 듯한 정황이 나오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2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위성사진과 정부 통계 분석, 전문가들과 지방 관리, 주민 인터뷰 등을 종합해 이같이 보도했다.
FT는 약 9개월에 걸쳐 계속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교전으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인 ‘블루라인’을 따라 북쪽으로 약 5㎞ 이내의 땅이 초토화됐다고 전했다.
접경 마을 나쿠라에는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연기가 자욱했고 주택 대부분이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한 주민은 “아름다웠던 우리 마을은 이제 ‘유령 마을’이 됐다”라며 “이곳에서 반경 10㎞ 이내의 모든 마을도 마찬가지다”라고 한탄했다.
또 다른 접경 마을 크파르킬라의 시장 하산 샤이트는 “매일 파괴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라며 “일부 지역은 가자지구처럼 보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레바논 남부 관리 하솀 하이다르는 주택 약 3000채가 완전히 파괴됐으며 상수도 시설과 저수지, 전력망, 도로 등의 기반 시설도 대부분 다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고 설명했다.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 외에도 이스라엘군은 소이탄과 백린탄 등을 이용해 레바논 남부의 생태계도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소셜미디어(SNS)에는 이스라엘군이 중세 시대에 쓰이던 투석기를 사용해 불이 붙은 발사체를 레바논에 날려 보내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유됐다.
이외에도 이스라엘 병사가 레바논 국경 인근에서 불붙인 화살을 쏘는 모습도 포착됐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5일 보고서를 내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백린탄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민간인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백린탄은 발화점이 낮은 백린을 활용한 무기로, 산소에 닿으면 4000도의 열을 내며 연소해 주변의 모든 것을 태우는 ‘악마의 무기’라고도 불린다.
이스라엘의 화공으로 레바논 남부 일대의 올리브 과수원과 양봉장, 목초지 등이 훼손돼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와 관련해 레바논 남부에서 오직 헤즈볼라 진지를 공격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헤즈볼라 전투원들이 엄폐물로 사용 중인 수풀을 불태우는 것도 포함된다고 해명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레바논 남부에서는 약 9만5000명이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 중인 가자지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완충지대를 조성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월 이스라엘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약 58㎞에 달하는 가자지구 분리장벽을 따라 폭 약 1㎞가량의 땅에 있는 모든 건물을 철거해 완충지대를 만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미국은 가자지구 내 완충지대 설치는 가자지구의 면적을 줄이는 조처라며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또 유엔은 가자 접경지 일대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주택을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이들이 이스라엘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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