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영종대교를 따라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대한항공의 신 엔진 정비 공장이 들어선다. 연면적 약 14만200㎡, 축구장 20개를 합친 규모다. 대한항공은 자회사 아이에이티가 지난 2016년부터 운영 중인 민간 항공기 엔진 시험 시설(Engine Test Cell·이하 ETC) 바로 옆에 신규 엔진 정비 공장을 증축하고 있다. 올해 3월 기공식을 열고 첫 삽을 떴으며 이를 통해 대한항공의 항공 MRO 역량에 관심이 집중된다.
MRO는 정비(Maintenance), 수리(Repair), 오버홀(Overhaul)의 약어다. 항공 MRO는 안전한 항공기 운항을 위해 기체, 엔진, 부품 등을 정비하는 작업을 말한다. ▲매 이륙 전·착륙 후 항공기 상태 점검 ▲비행 시간·이착륙 횟수별 항공기·엔진·부품 검사 및 교환 ▲항공기·엔진·부품 전체 종합 점검 ▲각종 데이터 활용 고장 예방 활동 모두 포함된다. ‘안전 운항’이라고 하면 이륙해서 착륙하는 순간까지를 생각하지만 항공기가 지상에 서 있는 동안에는 MRO가 안전 운항을 맡는다. 정비사 확인이 없으면 이륙할 수 없다.
대한항공은 탄탄한 정비 역량을 바탕으로 23년 연속 인명 무사고 운항을 이어오고 있다. 보험 요율 역시 전 세계 항공업계 최저 수준이다. 대한항공은 본사 내부에 정비본부를 두고 MRO 사업을 운영, 운항과 시너지 효과를 내왔다. 항공기 엔진·부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한편, 긴급 상황에서도 정비 작업을 차질 없이 수행했다. 최근에는 수익 창출 및 내수 활성화 신사업으로 MRO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인천·김포·부산서 경정비부터 엔진·부품까지
항공 MRO는 크게 운항·기체 정비와 엔진 정비, 부품 정비로 나뉜다. 운항·기체정비에는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타이어, 엔진 오일, 소모품 등을 점검하는 경정비가 있으며 항공기 동체, 날개, 전기 배선, 객실 내부 등 기체 전반을 점검하는 정비도 포함된다. 엔진 정비는 항공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을 다루고 있어 중요도가 높고 풍부한 경험과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부품 정비는 항공기와 엔진에 장착되는 부품을 정비한다. 대한항공은 1969년부터 부품 정비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대한항공 항공기 정비는 인천과 김포, 부산에 있는 격납고에서 지원한다. 최신 장비와 시설을 유지했으며 간단한 정비부터 복잡한 종합 정비 서비스까지 폭넓게 제공한다. 인천 격납고는 2대가 넘는 보잉 747 항공기를 동시 수용 가능하다. 중·대형기 정비에 특화됐고 최신 장비와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바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항공기를 운용하는 입장에서 편리하다. 김포 격납고는 중·소형기 정비에 특화됐다. 김해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부산 격납고는 기체 정비에 특화됐으며 항공기에 옷을 입히는 페인팅 작업도 할 수 있다.
MRO 사업, 해외 의존도 낮추고 내수 활성화
대한항공은 MRO 사업 중에서도 항공기 엔진 정비에 역량을 집중하는 중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1972년 한국 항공당국과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인가를 받아 항공기 엔진 수리를 시작했다. 1976년 보잉 707항공기 엔진 중정비 작업을 시작하며 엔진 MRO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2024년 현재까지 총 5000대에 가까운 엔진을 재탄생시켰다. 대한항공은 고장난 항공기 부품을 완전히 분해한 후 세척하고 수리한 뒤 장착하는 중정비가 가능하다. 엔진의 경우 경기 부천에 있는 공장에서 정비한 후 영종도 ETC에서 최종 성능 시험을 거쳐 출고한다.
대한항공은 자사뿐만 아니라 진에어를 포함한 국내 항공사 일부, 미국 델타항공, 중국 남방항공 등 해외 항공사의 항공기 엔진 수리를 수주하기도 했다. 국내외 항공사가 항공 MRO 산업에서는 대한항공의 고객이기도 하다.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작사인 프랫앤휘트니(PW)와 제너럴일렉트릭(GE)도 대한항공에 일부 엔진 정비를 맡겼다. 대한항공의 정비 기술력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평가받았다. 한국과 미국 연방항공청(FAA), 유럽 항공안전청(EASA), 중국 민용항공국(CAAC) 등 국내외 관계 당국 12곳으로부터 해당 국가의 항공기와 엔진, 부품을 정비할 수 있는 인가를 받았다.
영종도 운북지구 대한항공 엔진 정비 단지가 완공되면 자체 수리할 수 있는 엔진 대수가 크게 늘어난다. 현재 연간 100대 정도를 수리할 수 있는데 향후 연간 360대의 엔진 정비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대한항공이 수주 물량을 늘리면 국내 항공 MRO 정비의 해외 의존도도 낮아질 수 있다. 현재 국내 항공 MRO 전체 물량의 절반가량(2020년 기준 약 1조7000억원)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토교통부도 2025년까지 국내 항공 MRO 물량의 70%를 국내에서 처리하고 2030년까지 국내 MRO 시장 규모를 5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2023년 8월 기준 대한항공 MRO 사업은 직·간접 고용을 포함해 전체 330명가량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오는 2027년 신 엔진 정비 공장이 가동되면 관련 인력이 1000명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2021년 ‘PW MRO 네트워크’ 가입
대한항공은 PW와 GE, CFM인터내셔널의 엔진 수리를 맡는다. PW와 GE 엔진은 전 세계 항공기 10대 중 8대에 들어갈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21년 PW사의 차세대 ‘기어드 터보 팬’(Geared Turbo Fan·GTF) 엔진 정비 협력 계약을 맺었다. 이는 PW사 엔진 정비 네트워크에 가입했다는 의미로, 대한항공의 정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현재 GTF 엔진 정비 네트워크에는 미국 델타, 독일 루프트한자 테크닉 등 해외 주력 항공사 및 MRO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23년 10월 GTF 엔진 초도 물량을 입고해 본격적인 정비를 시작했다. 차세대 GTF 엔진인 ‘PW1100G-JM’은 친환경 엔진으로 각광 받고 있다. 효율이 높고 탄소 배출이 적은 에어버스 A321neo 기종도 이 계열 엔진이 들어간다. 대한항공은 앞으로 매년 100대가 넘는 차세대 GTF 엔진을 수주받아 정비할 예정이다. 국내 항공 정비 분야에서 이 같은 대규모 수주는 대한항공이 처음이라는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차세대 신형 엔진을 포함해 정비 가능 엔진 대수를 늘려나갈 방침이다. 현재 대한항공이 오버홀 정비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 엔진 종류는 6종인데, 여기에 GE의 GEnx 시리즈 2종과 CFMI의 LEAP-1B를 추가해 정비 가능 엔진 모델 수를 총 9종으로 늘릴 계획이다. 에어버스 A350 도입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대비해 롤스로이스사의 Trent XWB 엔진에 대한 타당성 검토도 진행한다. 이를 통해 대한항공의 글로벌 항공 MRO 업체로서 위상도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 이후 시너지 기대…고부가가치 신사업으로 육성
대한항공은 항공기 엔진·부품 관련 정비 기술을 국내 중소 협력 업체에 전수하며 산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항공기 부품 국산화와 관련 인증을 받는 과정을 지원해왔다. 국내 업체에서 제작한 항공기 부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도 상생을 이어왔다.
국토교통부 인가를 받은 항공기 정비 교육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정비자격증 응시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정비사 양성 과정은 물론 정기 과정, 특수 과정, 관리자 훈련 등 세분화된 커리큘럼을 운영 중이다.
9만 개가 넘는 항공기 자재 품목을 고객사에 판매·대여하는 부품 공급망 역할도 하고 있다. 항공기를 수리하는 다양한 첨단 장비와 공구도 대한항공에서 빌려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MRO 사업 분야는 아시아나항공과 통합한 이후 시너지 효과도 기대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 에어서울, 에어부산의 항공 정비 물량까지 흡수할 경우 성장이 예상된다. 또 양사 정비 인력과 시설을 적극 활용해 효율적인 운영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 MRO는 고효율·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대한항공은 항공 엔진 MRO 산업에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지고, 안전한 항공기 운항으로 고객들이 믿고 탈 수 있는 항공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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