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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29) 푸틴은 사랑을 싣고 …베트남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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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20일 하노이를 다녀갔다. 북한 방문에 이은 짧은 일정이었다. 세계 언론들은 푸틴의 이번 방문을 바이든, 시진핑에 이어 세계 열강의 지도자들을 하노이로 불러들인 베트남 균형 외교의 성과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관영 베트남통신사의 대표 영자지 <베트남 뉴스>는 푸틴의 이번 베트남 방문을 보도하며 1면 표제를 “From Russia……with love”라고 뽑았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한국 TV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한다. 이 프로그램은 옛 연인이나 은인들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베트남 뉴스>의 제목이 함축하는 베트남의 속내는 무엇일까? 러시아로부터 ‘연인’이 ‘사랑’을 품고 베트남을 찾아왔다는 뜻인가? 러시아로부터 온 ‘연인’을 ‘사랑’으로 맞는다는 것인가? 이제까지 두 나라 관계의 맥락을 안톤 츠베토프의 연구를 통해 살펴보고, 푸틴의 이번 방문이 베트남-러시아 관계에서 가지는 의미를 이해해보자.
 

2024년 6월 20일 푸틴의 하노이 방문을 보도한 베트남 뉴스 1면 사진베트남통신사
[2024년 6월 20일 푸틴의 하노이 방문을 보도한 <베트남 뉴스> 1면. 사진=베트남통신사]

 
– 냉전 시기 베트남-소련 관계
 
소련은 1950년 중국 다음으로 베트남민주공화국, 즉 통일 이전 북베트남과 수교한 국가였다. 베트남이 통일되기 전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소련은 북베트남에 중국 다음으로 많은 군사,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북베트남-중국 관계는 베트남전쟁에서 전술상의 차이, 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지원 축소 등으로 인해 이미 전쟁 중에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이 관계는 전쟁이 끝나고 중국이 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자 냉각됐다. 동시에, 베트남이 1978년 12월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중국이 1979년 2월 베트남을 침공하며, 베트남과 중국 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 반면 베트남은 1978년 소련과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 경제협력체 코메콘에 가입하며 소련에 경도됐다. 이후 베트남은 1990년대 초까지 주로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 경제적, 정치적 우호 관계를 발전시켰다.

베트남은 소련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주요 포스트가 됐다. 베트남은 소련에 2004년까지 깜라인(캄란 Cam Ranh)만에 해군기지를 운용하도록 허용했다. 소련은 1979년 봄부터 군사력을 전개하고 기지를 업그레이드해 바르샤뱌 조약기구 이외 지역의 해군기지로서는 가장 큰 기지로 변모시켰다. 한편 1985년 고르바쵸프가 등장하며 소련의 대외정책을 급격히 전환해 자유주의권 국가들과 교류를 모색했다. 그는 미국이 필리핀의 수빅과 클라크 기지에서 철수하면 소련도 깜라인에서 철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소련이 개혁‧개방에 착수하며 베트남에 대한 원조를 삭감했고 베트남과의 관계도 중시하지 않았다. 소련의 정치적 후원도 약화됐다. 1988년 남중국해의 존슨 사우스 리프(베트남어명 각마)에서 베트남과 중국이 충돌했을 때도 소련은 중국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에 대응해 베트남은 대외관계의 다변화를 모색했다.

베트남-소련 관계는 경제부문에서 진전됐다. 노이바이 공항과 하노이 시내를 잇는 탕롱 대교가 1985년 완성되며 양국 협력의 상징이 됐다. 탕롱 대교는 당초 중국의 지원으로 건설하기 시작했으나 중단됐다가 소련의 지원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1986년 양국의 합작기업으로서 비엣솝페트로(VietSovPetro)가 출범해 원유 발굴에 나선 것도 중요한 성과였다. 1980년대 말에는 호아빈 및 찌안 수력발전소, 파라이 화력발전소 등이 소련 지원으로 건설됐다.
 
– 탈냉전 시기 베트남-러시아 관계의 변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탈냉전의 문턱을 넘으며 소련의 베트남에 대한 지원은 축소됐다. 1991년 소련의 해체는 베트남에 큰 충격이었고, 베트남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 노력과 함께 비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를 확대해 나갔다. 1994년 보반끼엣 총리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양국 간 기본조약을 체결해 1978년 우호협력조약을 대체했다. 이제 양국은 더 이상 동맹국이 아니며 많지 않은 공동의 이익을 가진 상대였다. 반면 비엣솝페트로는 1991년 기업 운영을 개시하여 1990년대에 걸쳐 원유 생산을 확대했다. 비엣솝페트로가 양국 협력의 성공 사례였다.

깜라인의 러시아 해군기지는 1990년대에 계속해 쇠퇴했다. 이 기지와 관련한 종사자와 가족들의 수는 1987년 6천 명에서 1990년대 초 700명으로 감소했다. 1995년 깜라인 비행장 근처에서 러시아의 Su-27 전투기 세 대가 사고로 파괴되며 기지의 낙후한 장비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러시아는 2002년 기지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러시아는 Su-27 전투기, Su-22M4 폭격기, 미사일 탑재 함정 등 무기를 베트남에 계속 수출했다.

인적 교류에서도 옛 소련과 러시아는 베트남에 우호적이었다. 소련 및 러시아 유학생수는 지난 60년간 7만여 명에 달하며, 그중 3만여 명의 학사, 3천여 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9만 8천 명은 직업훈련을 받았다.
 
– 푸틴 집권 시기 양국 관계
 
푸틴이 2000년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며 그의 시대를 열었다. 푸틴은 국제적 지위를 되찾고자 적극적 대외정책을 채택하고 아시아 외교에도 중점을 뒀다. 러시아의 아시아 정책에서 베트남은 특별 지위를 갖게 됐다. 푸틴은 2001년 베트남을 방문해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조했다. 양국간 교역은 2002년 4억 달러에서 2005년 9억 달러로 증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 말에 러시아 전체 교역에서 베트남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0.4%, 베트남의 전체 교역에서 러시아와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3%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2000년대에 러시아의 베트남으로의 무기 수출은 확대됐다. 베트남은 2003년에 Su-30MK 전투기 네 대를 주문했다. 양국간 방위협력 MOU를 체결한 2008년 군사장비 계약액은 10억 달러, 2009년 35억 달러에 달했다. 이때 베트남은 Su-30MK 여덟 대, 함정 등을 주문했고, 킬로급 잠수함 여섯 기를 주문했다. 2010년경 베트남은 중국, 인도 다음으로 러시아의 세 번째 무기 수출대상국이었다. 2010년대 양국 관계가 더 밀접해지며 양국은 2012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다. 양국은 2014년에 러시아 군함이 깜라인만에 기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협정을 체결했고, 러시아 공군기가 깜라인 공항을 유류 재공급을 위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베트남이 러시아에 주문했던 킬로급 잠수함 여섯 기는 2017년 초까지 베트남에 인수됐다.

한편 2010년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Rosatom) 산하 아톰스트로이엑스포트(Atomstroyexport)가 베트남의 첫 번째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권을 땄다. 그러나 2011년에 일본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고 예산 제약으로 인해 이 사업은 중단됐다. 반면 원유기업 비엣솝페트로는 성공적으로 운영되어, 양국은 2030년까지 이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가즈프롬(Gazprom)도 베트남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한다. 또한 베트남의 페트로베트남도 러시아에 투자하여 루스비엣페트로(RusVietPetro) 합작기업을 설립하여 원유를 산출하고, 가즈프롬비엣(GazpromViet)이 천연가스를 생산한다. 원유와 천연가스 분야 이외에서 양국간 협력은 많지 않은 상태다.
 
– 현시기 푸틴의 베트남 방문의 의미
 
현시기 상황으로 보아 베트남이 2024년 6월 푸틴의 하노이 방문을 주도적으로 추진했을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러시아가 우크라니아 침공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궁지에 몰렸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는 때다. 러시아는 우크라니아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무기 공급을 받아야 하고, 세계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음을 표방할 장소를 베트남으로부터 제공받아야 했다. 이런 점에서 푸틴의 이번 북한과 베트남 방문은 푸틴에게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푸틴의 하노이 방문은 양국의 협력을 한층 더 증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양국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로 하고, 상대국에 적대적인 동맹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표명했다. 베트남이 이미 ‘4불 정책’을 표방하고 대외정책을 집행하고 있는 점에서 보면, 이번 동맹 불가입 표명은 기존 정책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한편 양국은 남중국해와 관련해서 국제법에 따른 항행의 자유 보장, 무력 불사용,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고,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의 완전한 이행과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행동준칙의 조속한 협상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이러한 안보 관련 선언은 각각 미국과 중국에 대한 러시아와 베트남의 이해를 지지하는 것이다. 푸틴의 하노이 방문이 미국 또는 자유주의권에 대한 균형 외교일까? 역사에서 봤듯이 베트남은 이를 중국에 대한 균형 외교로 활용할 수도 있다. 베트남에게 러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은 중국에 대한 균형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베트남은 2022년 3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 규탄 결의에 기권한 바 있다. 베트남이 우크라이나 침략 국가의 수뇌인 푸틴을 맞아 정상외교를 한 것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여전히 남는다.

경제부문에서, 양국의 교역액은 2021년 55억 달러를 초과했으나 2023년 36억 달러 수준에 있다. 러시아는 베트남에서 186개 프로젝트에 투자해 투자순위에서 26위에 있다. 이처럼 양국간 경제 협력은 비교적 약한데, 양국은 교역을 증진시키고 투자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로 했다. 에너지·석유·가스 분야 핵심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신에너지·청정에너지·지속가능발전 분야 등에서의 연구 협력도 조속히 확대하기로 했다. 러시아 로사톰 대표와 베트남 과학기술부 장관은 베트남에 원자력 과학기술센터를 건립하는 양해 각서를 체결해 원전 건설 가능성을 열었다. 베트남 산업통상부는 러시아 국영 자루베즈네프트에 베트남 남부 대륙붕 11-2 광구 개발을 허가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기업 노바텍도 베트남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다.

베트남은 레닌 동상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다.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가 국가의 기반이 되는 이념이지만 실제로 일반인들은 이념을 고려하지 않고 산다. 베트남인들, 특히 북부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 이상으로 러시아에 호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는 베트남 통일 전과 후에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해준 고마운 국가였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 사람 중에는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다. 특히 공산당, 정부 및 학계에서 활동하는 중장년 세대에 러시아 유학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현재 베트남 젊은이들 가운데 러시아 유학을 ‘꿈꾸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베트남의 미래 세대는 대부분 미국과 유럽을 선호한다. 베트남과 러시아가 전통적 우방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슬리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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