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파워트레인‧전장부품 등 ‘전기차‧SDV’ 대응 포트폴리오 풀 세팅
스마트폰‧태양광 등 ‘안 되는 사업’ 버리고 유망사업 투자 집중 성과
“AI가 모든 산업에 혁신 촉발…사업 구도에 큰 영향”…미래 핵심사업 지목
지난 3월 미국의 유력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랜드가 발표한 ‘올해의 자동차산업 파워 리스트(2024 Motortrend power list)’ 50인 중 10위권 내에 국내 대기업 총수 두 명이 포함됐다.
세계 3위 자동차 업체의 총수이자 국내 자동차 산업의 리더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명단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다소 의외였다. 다름 아닌 구광모 LG 회장이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8년 6월 29일, 구광모 회장 취임 전까지만 해도 LG그룹이나 계열사 CEO가 자동차 업계에서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일이다. 그만큼 구 회장 체제 6년간 LG가 큰 변화를 이뤄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광모 체제 LG, 전기차‧SDV 대응 최적 포트폴리오 갖춰
미래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의 두 축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SDV)이다. 구동계 측면에서는 빠른 충전과 긴 주행거리를 보장하는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는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구독서비스, 공유서비스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대응할 수 있는 전장 체계를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
LG는 전기차와 SDV 모두에 강력한 경쟁력을 갖춰놓고 있다.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글로벌 업계를 선도하고 있고, LG화학의 분리막 사업이 뒷받침한다. 구동모터 등 전기차 파워트레인은 LG전자 산하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이 제공한다.
SDV에 필요한 전장(자동차용 전자장비) 부품은 LG전자의 전장사업 부문이 책임진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담당하는 LG전자 VS사업본부는 차량용 통신모듈인 텔레매틱스 부문에서 지난해 전세계 시장의 22.4%를 점유하며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AVN(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 분야에서도 2021년 이후 줄곧 두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LG전자는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글로벌 자동차 기술 전시회 ‘오토테크 디트로이트 2024(AutoTech Detroit 2024)’에 참가, SDV 솔루션인 ‘LG 알파웨어(LG αWare)’를 소개하며 완성차 고객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LG 알파웨어는 자동차에서 ▲플레이웨어(PlayWare) ▲메타웨어(MetaWare) ▲비전웨어(VisionWare) ▲베이스웨어(BaseWare) ▲옵스웨어(OpsWare) 등 5가지 핵심 솔루션을 제공한다.
LG전자는 알파웨어를 소개하며 향후 자동차를 ‘바퀴 달린 생활공간’으로 바꾸겠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차원이다. 실제로 LG전자는 국내 여러 차량에 웹OS 콘텐츠 플랫폼과 콘텐츠별로 최적화된 음향을 제공하는 AI(인공지능) 오디오 솔루션 등을 공급 중이다.
웹OS는 LG전자가 스마트TV에 탑재해온 독자 운영체제다. 차 안에서 다양한 스마트TV 콘텐츠,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LG전자의 차량용 웹OS가 내장된 기기는 현재 전세계에 2억대에 달하며, 이를 2026년까지 3억대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그 외에도 LG그룹은 LG전자 자회사 ZKW의 차량용 조명 시스템, LG디스플레이의 차량용 OLED, LG이노텍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센싱 솔루션 등 차체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포트폴리오를 갖춰놓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미래 자동차 시장의 주인공은 더 이상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위기론이 나온다. 배터리와 구동모터를 비롯한 파워트레인과 SDV용 각종 전장 부품들이 자동차의 성능과 상품성을 좌우하고, 자동차 생산에 소요되는 원가 비중도 높아지면서, 해당 분야 기업들이 업계를 주도하고 완성차 업체들은 단순 조립 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기차와 SDV 양쪽에서 경쟁력을 갖춘 LG는 완성차 업체들에게 있어 가장 먼저 손잡아야 할 파트너이자,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와 LG마그나의 파워트레인으로 움직이고, LG전자의 디지털 콕핏으로 제어되는 전동화 SDV 제작 과정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껍데기만 조립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
배터리와 전장 사업이 지금의 위상을 갖기까지 LG는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뎠다. 배터리 사업의 경우 리튬이온배터리 연구 착수 시점부터 계산하면 1992년이 시적점이다. LG전자 VS사업본부는 2013년 출범해 올해로 11년째를 맞는다.
미래를 보고 투자한 이들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그동안 여러 경영진과 임직원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성공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구광모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었다.
구 회장 취임 이후 스마트폰, 연료전지, 태양광 등 한때 유망하게 여겨졌던 사업들이 LG에서 떨어져 나갔다. ‘안 되는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 여력으로 유망 사업을 육성해 제2의 도약을 꾀하겠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구 회장은 배터리와 전장을 LG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사업으로 보고 과감한 투자를 지속했고, 그 결과 각 분야에서 글로벌 리딩 업체로 자리매김하는 결실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멀티모달 AI 모델 '엑사원' 중심으로 AI 사업 고도화
유망 분야를 정확히 지목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성과를 이뤄내는 구광모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 다퉈 뛰어들고 있는 인공지능(AI) 사업에서도 빛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구광모 회장은 ‘AI가 향후 모든 산업에 혁신을 촉발하며, 사업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적극적인 육성 방침을 밝혀 왔다.
LG는 AI를 미래 핵심사업으로 점찍고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AI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2020년 설립된 AI 싱크탱크 LG AI연구원은 설립 이듬해인 2021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중언어가 가능하고, 언어와 이미지 양방향 생성이 가능한 멀티모달 AI 모델 ‘엑사원’을 개발했으며, 계열사 및 글로벌 파트너사들이 각 산업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 AI를 만들어가고 있다.
LG AI연구원은 지난해 7월 한층 진화한 엑사원 2.0을 대중에 공개했다. 엑사원 2.0의 언어 모델은 기존 모델과 동일한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추론(Inference) 처리 시간은 25% 단축하고, 메모리 사용량은 70% 줄여 비용을 약 78% 절감했다.
언어와 이미지 간의 양방향 생성이 가능한 멀티모달 모델은 이미지 생성 품질을 높이기 위해 기존 모델 대비 메모리 사용량을 2배 늘렸지만, 추론 처리 시간을 83% 단축해 약 66%의 비용 절감을 달성했다.
고객들은 엑사원 2.0을 원하는 용도나 예산에 맞게 모델의 크기부터 종류(언어, 비전, 멀티모달), 사용 언어까지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 2.0 완성과 함께 ▲유니버스(Universe) ▲디스커버리(Discovery) ▲아틀리에(Atelier)로 칭하는 3대 플랫폼도 구축했다.
엑사원 유니버스는 전문가용 대화형 AI 플랫폼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믿고 정보를 탐색하며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LG AI연구원은 LG 그룹 내 AI 연구자를 대상으로 엑사원 유니버스의 AI/머신러닝 분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화학, 바이오, 제약, 의료, 금융, 특허 등 엑사원 유니버스의 각 전문 도메인별 특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엑사원 디스커버리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플랫폼으로 가장 먼저 신소재·신물질·신약 관련 탐색에 적용하고 있다.
엑사원 디스커버리에는 논문과 특허 등 전문 문헌의 텍스트뿐만 아니라 분자 구조, 수식, 차트, 테이블, 이미지 등 비(非)텍스트 정보까지 AI가 읽고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심층 문서 이해(DDU, Deep Document Understanding) 기술이 적용됐다.
엑사원 아틀리에는 인간에게 창의적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한 플랫폼으로, 저작권이 확보된 이미지-텍스트가 짝을 이룬 페어(Pair) 데이터 3억5000만장을 학습한 엑사원 2.0을 기반으로 이미지 생성과 이미지 이해에 특화된 기능을 제공한다.
LG AI연구원은 이들 3대 플랫폼을 바탕으로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주요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혁신을 유도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다른 기업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의 사업 모델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 일환으로 LG는 지난 3월 미국 연구소 잭슨랩과 알츠하이머·암 분석 AI 모델 설계에 뛰어들었다. 발병 원인과 진행 과정을 찾는 것은 물론 병리 이미지만으로 암을 신속하게 진단하고 치료제 효과를 예측하도록 함으로써 개인 맞춤 치료 연구의 초석을 다진다는 복안이다. 그룹은 새롭게 구축할 AI 체계가 신약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 시험에 이르기까지 기간을 단축하고 치료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최근 미국 출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AI 스타트업을 찾아 AI 분야 최신 기술 동향을 살피는 등 LG의 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현장경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구 회장은 AI 반도체 설계업체 ‘텐스토렌트(Tenstorrent)’와 AI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 AI(Figure AI)’를 방문해 반도체 설계부터 로봇 등 다른 분야에 이르기까지 AI 밸류체인(Value Chain) 전반을 세심하게 살폈다.
텐스토렌트를 방문한 구 대표는 짐 켈러(Jim Keller) CEO와 만나 AI 반도체의 트렌드와 텐스토렌트의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산업 영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피규어 AI 방문에서는 창업자이자 CEO인 브렛 애드콕(Brett Adcock)을 만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현황과 기술 트렌드에 대한 설명을 듣고, 피규어 AI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피규어 원(Figure 01)’이 구동하는 모습을 살펴봤다.
앞서 구 회장은 지난해 8월 북미 방문에서도 캐나다 토론토에서 ‘벡터(Vector) 연구소’와 ‘자나두(Xanadu) 연구소’를 찾아 AI 분야 최신 기술 동향을 살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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