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계열사 간 합병을 추진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구조조정의 배경에는 1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배터리 회사 SK온이 있다. SK그룹은 2021년 SK온 출범 후 약 20조원을 투입했으나 ‘투자금 유치 차질 → 수율(정상품 비율) 안정화 지연 → 적자 지속 → 시장 침체’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그 여파가 그룹 전체로 퍼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SK온이 제때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어려움이 가중된 것으로 본다. SK그룹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았던 2021년, 2022년에 SK온을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한 뒤 상장하거나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로 수조원대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으나 투자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 골든타임 놓친 상장
2020년 LG화학의 배터리 부문이 물적분할된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상장하면서 10조2000억원의 실탄을 확보했다. 뒤늦게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SK온도 출범 이후 상장을 준비해 왔으나 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쪼개기 상장’ 논란이 커지면서 차질이 생겼다. 쪼개기 상장이란 상장사가 다른 사업부를 분할해 다시 상장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는 추가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나 기존 상장사 주주는 알짜 사업부가 사라지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떨어진다며 반발한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아무리 늦어도 2028년 전에는 상장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상장 예상 시기는 2026년 말이었는데 2년 정도 늦어진 것이다.
SK는 LG와 이른바 ‘배터리 소송’을 벌이면서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입했다. 배터리 소송은 2017~2019년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하면서 시작됐다. LG는 SK가 조직적으로 핵심 기술을 빼갔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SK가 2조원을 물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저조한 수율에 수익성 악화
SK온은 올해 1분기에도 331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출범 이후 10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전환이 늦어지는 이유는 수율에 있다.
배터리 후발주자인 SK온은 미국·중국·유럽 등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공장을 건설하면서 선두 기업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해외 공장에서 70~80%대의 저조한 수율을 기록하면서 장기간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야 했다. 오랜 제조 경험을 가진 삼성과 LG는 국내에 있는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제품 설계와 연구개발 등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공장)’를 해외에 옮겨 건설하는 방식으로 수율을 확보했다.
SK온 해외공장의 수율은 최근에서야 90% 수준까지 올라왔다. SK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 이후 미국, 중국, 유럽 등 공장의 수율이 90%에 도달하는 등 안정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 고금리로 전기차 수요 정체
SK온의 10개 분기 누적 적자 규모는 2조5876억원에 달한다. 증권가는 올해 2분기에도 3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 SK온은 당초 지난해 분기 기준 흑자를 예상했으나 흑자전환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고금리,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전기차 수요가 줄면서 완성차 업체의 투자도 지연되고 있다. 포드는 SK온과 건설 중인 켄터키 2공장의 가동을 2026년 이후로 연기했고 튀르키예 합작공장은 취소했다.
SK온의 흑자전환이 지연되면서 채무 부담은 SK그룹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SK온에 차입보증을 선 SK이노베이션의 S&P 신용등급은 지난 3월 BBB-에서 BB+로 강등됐다. SK이노베이션의 부채는 SK온 출범 전인 2020년 23조396억원에서 작년말 50조7592억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의 리밸런싱(사업 재조정) 작업은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반도체와 배터리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라며 “SK하이닉스의 실적이 회복되고 있으나 SK온의 흑자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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