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은행권의 느슨한 대출 사후 점검 기준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고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최근 우리은행에서 대출 점검 규제의 허점을 악용해 100억원을 횡령한 사고가 터진 데 따른 것이다. 사고를 낸 우리은행 직원은 10여개 업체 명의로 ‘쪼개기 대출’을 받아 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직원은 ‘소액·단기’ 기업 대출은 본점 차원의 감시가 소홀하다는 점을 노렸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우리은행 횡령 사고 검사를 마친 후 은행권 ‘자금 용도 외 유용 사후 점검 기준’을 정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기준은 은행연합회가 2005년 제정한 자율 규제로, 은행은 이 매뉴얼에 따라 대출금이 대출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사후 점검 생략 대상’이다. 제2장 제3조에 따르면 ▲차주(돈 빌린 사람)가 법인인 경우 건당 5억원 이하 ▲개인사업자는 건당 1억원 이하 ▲3개월 이내 단기 여신은 사후 점검 생략이 가능하다. 수백 곳의 지점에서 취급한 대출을 본점에서 모두 점검하기 힘든 만큼 일부 대출에 대해선 생략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밖에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의 여신 ▲기존에 받은 대출의 연장·대환·재약정의 건도 사후 점검 대상에서 제외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모든 대출을 본점에서 살펴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사후 점검 생략 기준이 모호하고 느슨한 경향이 있다”라며 “횡령 사고를 낸 우리은행 직원 A씨 역시 규제의 허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 대출 업무를 담당해 온 A씨는 이러한 빈틈을 파고들어 본점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수개월에 걸쳐 돈을 횡령했다. A씨는 10여개 업체의 명의를 도용해 ‘대출액 10억원 이하’ ‘만기 3개월 이내’ 대출을 쪼개서 받는 방식으로 총 100억원을 횡령했다. A씨는 기존 거래 업체로부터 법인 인감증명서 등의 여분을 받아 차주 몰래 계좌를 만들고 대출을 신청해 돈을 가로챘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은행 지점에서 나가는 수천, 수만 건의 대출을 모두 본점에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효율성과 비용 절감의 측면에서 사후 점검 생략 대상을 예외로 뒀던 것”이라며 “추후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 기준을 살펴볼 것이다”라고 했다.
학계 전문가는 횡령 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만큼 규제도 이에 발맞춰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와 비교해 횡령 사고는 점점 늘고 있고 수법도 치밀해지고 있다”며 “금융 당국과 은행권은 더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하기 위해 내부통제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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