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간 대치가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갈등 사태가 조만간 매듭지어진다고 해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정부의 의료개혁이 나아가야 할 방향, 파산 위기에 몰린 대형 병원의 지속 가능한 경영 방안, 대변화가 예상되는 미래 의료 대비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 의료 현주소와 미래 해법에 대해 알아본다.
곪을 대로 곪은 대한민국 의료 현실은 의·정 갈등으로 비화했다. 정부는 내년도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을 두고 의료계와 4개월 가까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전공의 집단 휴진으로 시작된 의료계 반발은 의대 교수들 집단 휴진, 전국 의사 총파업으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강경 대응하며 의·정 갈등은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달았다.
최근 정부는 의료인과 각계 전문가가 모여 적정한 의사 수를 추정해 계산하는 전담기구를 꾸리기로 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논의 절차를 마련해 의대 정원 증원 등을 둘러싼 의·정 갈등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가 동참하면 2026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을 이 기구에서 다시 논의할 여지도 열어뒀다.
그간 다른 나라 의대 정원 규모는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국 의대 정원 확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00년 1만8000명에서 2021년 2만8000명으로 56%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국은 5700명에서 1만1000명으로 93% 증가했다. 프랑스는 2000년 3850명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했지만 2020년에는 160% 증가한 1만명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일본 역시 같은 기간 7630명에서 9330명으로 의대 정원이 22% 늘었고, 지난해에는 9403명으로 전년 대비 소폭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료계에선 의·정 간 반목을 해소하려면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윤주홍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교수와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 권인호 동아대 의대 교수는 최근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실은 공동 기고문에서 “한국에서 젊은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건강보험제도를 재정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고문에 따르면 현재 한국 의료와 관련한 전국적인 혼란은 극도로 낮은 수가에서 시작됐다. 평균적으로 한국 국민은 1차 진료 1회당 본인부담금 1.82파운드(3199원)를 납부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 6.70파운드(1만1776원)를 환급한다. 중환자실은 이용한 자원에 대해 약 60%를 환급받고 병원은 40% 손실을 입는다. 이들은 기고문에서 “이런 낮은 환급으로 많은 병원이 재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방재승 전 서울대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도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내놓게 된 배경을 현행 건보제도에서 찾았다. 건보 재정이 빠르게 고갈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비급여와 급여 진료를 함께 하지 못하도록 하는 ‘혼합진료’ 금지와 같은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게 됐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의료 공급자가 적정한 수가를 받지 못하면 양심적 진료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의료개혁특위를 통해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건강보험재정과 국가재정을 병행 투입해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보 재정은 필수의료 수가 개선에 집중하고, 국가 재정은 인력 양성·인프라 확충 등에 투자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웠다. 또 필수·지역의료에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지불제도와 비급여·실손보험 개혁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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