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전국이 함성으로 뒤덮였다.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8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기쁨에 찬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거리는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도로의 자동차마저 경적 소리로 응원의 장단을 맞춰댔다. 거리에선 모르는 사람끼리 얼싸안고 춤을 추는 진풍경이 펼쳐졌으며 학교와 회사, 심지어 병원과 장례식에서조차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했다.
2002년 6월 22일은 그 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이날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한국과 스페인의 월드컵 8강전 경기가 열렸다.
한국은 붉은 악마의 뜨거운 응원 아래 경기 초 스페인을 압도했으나 전반 20분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전반 20분 이후 수차례 한국 골망을 위협했다. 이에 한국은 수비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여러차례 실점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이운재의 선방으로 한 골도 허용하지 않은 채 전반전을 끝냈다.
후반전 한국은 이천수를 교체 투입하며 기세를 되찾았다. 한국은 후반 이천수와 박지성, 안정환 등의 활약으로 상대 문전을 압박했다. 이후 연이어 상대 골망을 위협하면서 경기 흐름을 되찾았다. 그러나 곧바로 스페인에 주도권을 내주며 밀렸다.
그러자 거스 히딩크 감독은 후반 종료직전 수비수 김태영을 빼고 공격수 황선홍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고 결국 양팀 모두 득점하지 못한 채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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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국민이 숨죽인 승부차기,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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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차기에 나선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이 모두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이어 이운재가 스페인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내면서 한국에게 결정적 기회가 왔다.한국의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인 홍명보 선수가 등장하자 시간이 멈춘 듯한 긴장감이 전국을 감쌌다. 모든 국민은 손에 땀을 쥐고 TV 화면에 집중했다. 홍명보가 움직였고 그가 찬 공은 상대의 오른쪽 골망을 정확히 흔들었다.
“와아아~~~~~!”
동시에 대한민국 전역이 환호와 열광에 휩싸였다. ‘최약체’로 평가받던 한국이 우승후보였던 스페인을 무너뜨리는 ‘꿈’을 이룬 것이다.
한국의 4강 진출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국의 4강 진출은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매체에서도 대서특필하며 화제성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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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놀이가 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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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붉은 악마의 응원은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한국 응원단은 이색응원과 공연을 펼쳐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다. 특히 붉은 악마들의 기발한 카드섹션 응원은 전 세계에서 보도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거리에서도 응원은 이어졌다. 온국민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열띤 응원을 벌였다. 수백만명의 시민들은 전국 거리로 나와 연신 ‘대~한민국’을 외쳤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붉은 옷을 맞춰 입고 구호를 외치며 응원하는 모습은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전이 벌어진 다섯 차례의 길거리 응원에 나선 붉은 인파는 전 국민의 30%에 이르는 1326만명(연인원)이었다.
음식점과 술집 등 각종 가게에서도 관람 문화가 자리 잡았다. 시민들은 대형 TV 앞에서 환호하고 얼싸안았다. 이때 가게 주인들이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일도 빈번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 지하철역 등 그야말로 모든 곳이 응원의 열기로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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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하나된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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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의 기적은 4강 진출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월드컵 4강 신화는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다. 전국 회사는 출근 시간을 늦춰줬고 학교에서는 시험을 연기하기도 했다. 또한 각종 축제 일정도 한국전과 겹치지 않도록 변경했다.IMF 외환위기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던 우리 국민들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며 정신적인 해방감과 후련함을 느꼈다. 또 온국민이 한국대표팀을 응원하며 애국심 하나로 뜨겁게 뭉쳤다.
대한민국을 웃기고 울렸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은 6월30일 결승전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02년 6월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4강 진출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기적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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