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만 해도 주요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던 공모펀드의 인기가 최근 시들자 정부가 ‘심폐소생술’에 나섰다. 공모펀드를 주식처럼 상장시켜 거래를 원활하게 하겠다는 게 골자인데, 시장에선 아쉬운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상장한 일부 펀드가 투자자로부터 이미 외면받고 있는데, 상장 종류를 늘린다고 한들 효용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국내 증시에 상장된 공모펀드는 총 76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45개가 부동산 관련 상품이다. 개방형 펀드와 달리 중간에 투자금을 빼는 게 불가능해 수년간 자금이 묶이는 폐쇄형 공모펀드, 특히 부동산형은 한국거래소 등에 의무 상장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이 지점에 주목해 개방형 펀드와 같은 장외 공모펀드를 폐쇄형처럼 상장시킬 계획을 3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발표했다. 문제는 현재 상장된 공모펀드의 거래량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전날 발표에서 금융위 관계자는 “(상장된 공모펀드는) 거의 거래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런 이유로 금융위는 상장뿐만 아니라 공모펀드에 유동성공급자(LP)를 두는 안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LP란 투자자의 원활한 거래 체결을 위해 시장에서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하는 증권사다.
상장 공모펀드에 LP 제도를 도입한다는 건 거래가 쉽게 체결되지 않는다는 상장 공모펀드의 단점을 극복하겠다는 뜻이다. ETF가 주식 시장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ETF를 만든 자산운용사는 증권사와 LP 계약을 해야 하는데, 상장 공모펀드 역시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주된 LP 사업자는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메리츠증권, BNK투자증권 등이다.
하지만 LP가 있다고 해서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다. LP가 있어도 시장에서 인기가 없는 상품은 투자자들이 찾질 않아 LP의 호가 제출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1월 2~4일) 거래량이 1만주도 되지 않은 ETF는 전체 813개 중 34.07%(277개)다. 단 1주도 거래되지 않은 ETF는 4개다.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공모펀드가 상장돼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개방형 공모펀드는 투자자가 중도 환매할 수 있기 때문에 상장은 크게 의미가 없다”며 “투자금을 며칠 빨리 받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장에 따른 공모펀드의 환금성 제고는 해외형 펀드에만 적용되는 효과일 것으로 보인다. 상장 공모펀드는 주식처럼 타인이 물량을 받아주는 순간 거래가 체결된다. 결제일은 거래 체결일로부터 2일 뒤(T+2일)이기 때문에 실제 현금으로 투자금을 손에 쥘 수 있는 건 거래 체결 후 이틀 뒤다
통상 투자자가 상장되지 않은 공모펀드에서 투자금을 환매하기까지 국내형 공모펀드는 2~3일, 해외형 공모펀드는 5~7일 소요된다. 공모펀드는 투자자의 환매 청구 다음 영업일에 기준가가 산정돼 환매 과정이 진행되는데 국내형 공모펀드는 상장 공모펀드와 환매 속도가 비슷하다. 해외형은 현지와 시차가 맞지 않아 환매 대금을 수령할 때 시간이 더 걸린다.
ETF에서 알 수 있듯 공모펀드 활성화의 최우선 과제는 상품성이다. 투자에 편리한 제도도 투자자들의 투자할 만한 상품을 자산운용사들이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발간물을 통해 “국내 공모펀드 시장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액티브 주식형 펀드의 상품 매력도 제고와 함께 다양한 자산을 담은 대체투자펀드의 공급 확대가 중요하다”며 “규모의 경제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대형사들이 액티브 펀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시장을 선도해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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