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황효원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와 영업이익 감소 등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해 ‘사업 재편(리밸런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부사장급 이상 고위직 간부를 대폭 물갈이 하고, 수익이 나지 않는 계열사를 정리하거나 통합해 조직 슬림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당장 이번 주부터 하반기 실적 개선을 위한 릴레이 경영전략회의에 돌입했는데, 삼성 뿐만 아니라 대다수 그룹이 사업 전략 변경은 물론 계열사 수를 대폭 줄이고 중복 사업군을 정리하는 등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실적 악화로 포브스 기업 순위에서 하락, 전직 부사장이 기밀 유출 혐의로 구속기소되는 등 안팎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서 촉발된 위기 속 삼성전자는 주요 사업부문 별로 올해 하반기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글로벌 전략회의’ 일정에 본격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18일 모바일경험(MX) 사업부를 시작으로 19일 생활가전(DA)·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 20일 전사 등의 순으로 글로벌 전략협의회를 열고 있다. 25일에는 화성사업장에서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글로벌 판매전략회의가 열린다.
이번 회의는 지난달 21일 ‘삼성 반도체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된 전영현 부회장이 DS부문장을 맡은 후 처음 열리는 자리다. 회의에서는 지난해 1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낸 부진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방안과 파운드리 사업 등의 미래 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MX 사업부는 내달 프랑스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공개하는 폴더블폰 신작 ‘갤럭시Z 폴드·플립6’와 첫 스마트 반지 ‘갤럭시 링’ 등의 최종 점검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위기론’을 극복할 전략 마련이 급선무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6일 포브스가 공개한 글로벌 2000개 기업 순위에서도 지난해보다 7계단 하락한 21위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그룹사 ‘2인자’들이 머리를 맞댄 만큼 본업 경쟁력 확보를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되찾는데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릴레이 회의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2주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만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의 협력 강화도 주요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출국한 뒤 약 2주간 미국 동·서부를 가로지르며 메타, 아마존, 퀄컴 등 주요 빅테크 CEO들을 만나 미래 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의논했다.
SK그룹은 28~29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주요 계열사 CEO 등 경영진이 참석하는 경영전략회의를 연다. SK그룹은 사업 전반에 걸쳐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는 ‘리밸런싱’ 작업을 필두로 고강도 쇄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은 양대 축 중 하나인 그린·바이오 사업에서는 ‘질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이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등도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소, 재생에너지 등을 아우르는 에너지 사업을 하는 알짜 계열사인 SK E&S가 합병할 경우 자산 100조원이 넘는 초대형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재탄생한다. 에너지 사업의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극대화,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부진을 상쇄할 필요성 등이 합병을 검토한 배경으로 꼽힌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20일 SK E&S와의 합병설에 대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병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 공시를 내기도 했다. 회사 측 해명에도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장중 최고 20% 급등하는 등 시장에서는 합병 소식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처럼 SK그룹이 고강도 쇄신에 나서는 배경에는 투자 비효율과 계열사 실적 부진 등이 있다. 최태원 회장이 그룹의 방만한 투자를 지적해온 만큼 계열사 숫자를 줄이는 방안이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SK그룹의 계열사는 현재 219곳으로, 작년 198곳에서 1년 새 21곳 늘었다.
이미 일부 계열사들은 사업재편이 진행 중이다. 중간 지주사 격인 SK네트웍스는 이사회를 열고 SK렌터카 지분 100%를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8200억원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SK네트웍스는 매각 자금을 인공지능(AI) 사업 모델로 전환하는데 집중적으로 투자해 2026년부터 비약적인 성과를 낸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SK그룹 경영전략회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과 최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데뷔무대 격이다. 고강도 쇄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두 사람의 향후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그룹 역시 이르면 이달 말 올해 상반기 해외권역본부장 회의를 열 전망이다. 현대차와 기아 CEO 주재 하에 권역본부장들과 판매, 생산법인장이 참석해 주요 시장별 전략을 점검한다. 특히 전기차 등 친환경차 전략 점검과 대미 수출 전략 수립에 대한 논의가 집중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지난해와 올해 그 어느 그룹보다 실적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등 선전하고 있다. 국내 계열사 70곳을 둔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8조259억원으로, 국내 그룹 중 유일하게 10조원을 넘겼다.
현대차그룹 내에서 현대차(6조6709억원)와 기아(6조356억원)가 올린 영업이익 규모만 12조9766억원에 달했다. 그 외에 현대차그룹은 매출(285조2336억원), 당기순이익(20조5149억원), 고용(19만7727명) 항목에서는 삼성에 이어 2위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현대차는 인구대국 인도에서 증권시장 상장 절차에 돌입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다. 이를 위해 17일 현대차 현지법인인 현대차인도가 인도증권거래위원회(SEBI)에 기업공개(IPO) 관련 예비서류(DRHP)를 제출했다. 현대차인도는 IPO를 통해 최대 30억달러(약4조1670억원)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 IPO 사상 최대 규모다.
반면 올해 임금협상과 관련, 노조가 결렬을 선언하고 파업 수순에 돌입해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올해 임금협상 교섭 결렬을 선언한 노조는 20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쟁의 발생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24일 파업 찬반 투표를 벌인다. 노조가 실제 파업에 돌입하면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앞서 LG그룹은 지난달 초부터 2주간 구광모 회장 주재로 전략보고회를 열고 LG전자, LG이노텍 등 계열사와 사업본부의 중장기 전략을 점검했다.
LG그룹은 매년 상반기에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전략보고회를, 하반기에는 경영실적과 다음 해 사업계획을 중심으로 고객 가치 제고와 사업 경쟁력 강화 전략 등을 논의하는 사업보고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략보고회에서는 인공지능(AI)과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점검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구 회장은 29일 취임 6주년을 앞둔 이번 주 미국 출장 강행군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배터리,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그룹의 미래 사업과 관련해 10여건의 릴레이 세일즈를 소화하기 위해서다.
세일즈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제너럴모터스(GM)과 합작해 만든 배터리셀 제조사인 얼티엄셀즈의 공장 현황 점검을 시작으로 실리콘밸리를 찾아 LG가 투자한 글로벌 스타트업 임원과 AI 분야 사업 투자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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