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신혜주 기자] 금융사 직원은 항상 돈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남의 돈을 다루는 직업일수록 도덕성과 청렴성을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최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00억원대 횡령을 계기로 금융권의 미비한 내부통제와 단기실적 위주의 조직문화, 땅에 떨어진 직업윤리 등에 대한 문제점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몇몇 직원들의 도덕 불감증과 이를 초기에 잡아내지 못한 금융사의 방어 체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는 사고를 만들고 있다. 고객의 신뢰를 떨어트린 역대 금융권 횡령 사건을 되짚어본다.
1998년 11월 전북은행 서울지점에서 61억원의 횡령이 발생했다. 담당 과장이 고객 당좌수표 편취 등 위법·부당한 업무처리를 통해 거래처 당좌계정을 이용해 수차례에 걸쳐 횡령한 사건이다. 당시 전북은행은 주의적 기관경고를, 임직원 19명은 중징계 조치를 받았다.
1999년 6월 신협중앙회장이 직접 횡령을 저지른 일도 있다. 당시 황창규닫기황창규기사 모아보기 회장은 신협경남연합회장 및 중앙회장 재임 시 거액의 불법 대출을 취급해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2000년 초 신한은행에서는 400억원대 횡령이 4년에 걸쳐 두 번이나 발생했다. 2005년 4월 조흥은행 시절, 자금결제실 직원이 약 5개월 동안 은행 기타차입금계정에서 400억원을 횡령해 증권사에 개설된 본인 및 가족 명의 계좌로 선물·옵션 투자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332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예금 잔액 68억원에 대해선 지급정지 조치가 이뤄졌다. 관련자는 경찰에 고발 조치됐다.
2008년 12월 신한은행 원주지점에서 지점장이 고객 돈으로 주식과 펀드 등에 투자해 거액의 손실을 봤다. 당시 사고 금액은 400억원으로 은행 손실액은 225억원을 기록했으며, 본점의 특별감사가 시작되자 지점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직원들끼리 손발을 맞춘 사건도 있다. 2013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국민주택채권 담당 직원이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한 후, 친분이 있는 직원을 이용해 지급제시하는 수법으로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 당시 사고 금액은 111억9000만원이었으며, 이는 영업점 제보와 본부 자체 조사로 발각됐다. 사고 관련자들은 유가증권 위조 및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고령층 VIP 고객을 대상으로 벌어진 사고도 있다. 2015년 국민은행 부천상동지점에서 VIP실 팀장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80대 고객에게 금융상품 가입을 유도하고 허위 계약서를 작성해 고객 돈 13억원을 횡령했다. 이는 국민은행 감찰반에 의해 적발됐다. 고객은 은행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재판부는 은행에 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9년 IBK기업은행 속초지점에선 고객이 정기예금을 맡기고 재예치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당일에 이체취소가 가능하다는 허점을 노리고 자신의 차명계좌로 고객 돈 24억원을 빼돌렸다.
2022년에는 유독 많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부산은행 한 영업점 직원이 해외에서 들어오는 외환자금을 지인 계좌로 넣는 수법으로 23억원을 횡령한 사건도 있다. 업무 편의를 위해 고객의 도장이 찍힌 예금 해지 신청서 등을 보관하고 있다가 고객의 거래 자료를 위조했다. 사고자는 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새마을금고 송파중앙점에서는 한 직원이 2005년부터 2021년까지 고객 예금 40억원을 몰래 빼돌렸다. 강릉 지점에선 직원들이 고객의 예·적금 등을 무단 인출하고 대출을 몰래 실행하는 수법으로 129억원을 횡령했다.
KB저축은행 본점에서는 기업금융 담당자가 2015년부터 6년 동안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94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빼돌린 후, 횡령액의 90% 이상을 도박으로 탕진했다.
국내 은행 가운데 최다 횡령액을 기록한 곳은 경남은행이다. 투자금융부 직원이 15년간 자신이 관리하던 17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77회에 걸쳐 2988억원을 빼돌렸다. 회사의 부실화된 PF대출에서 수시 상환된 대출 원리금을 가족 등 제3자 명의 계좌로 이체하고 PF 시행자의 자금인출 요청서 등을 위조해 가족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법인계좌로 이체했다. 경남은행이 취급한 PF상환자금 158억원을 상환 처리하지 않고, 그가 담당하던 다른 PF대출 상환에 유용하기도 했다. 경남은행의 순손실은 595억원으로 추정되며, 사고자는 현재 검찰에 고소된 상태다.
시중은행 중에선 우리은행이 가장 많은 횡령액을 기록했다. 2022년 4월 당시 우리은행 본점에 재직 중이던 직원은 은행이 보유 및 관리 중인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 계약금 등에 대한 서류를 위조해 8년간 697억원을 횡령했다. 사고자는 징역 15년을, 공범인 사고자의 동생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카드사에서도 횡령이 발생했다. 롯데카드 마케팅 팀장을 포함해 직원 2명이 협력업체 대표와 공모해 해당 업체를 프로모션 협력업체로 선정했다. 이 업체는 프로모션 실적이 불분명했는데도 카드 발급 회원당 1만6000원을 정액 선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총 105억원을 지급하고 이중 직원 2명은 부동산 개발 투자에 66억원을 썼으며, 나머지 39억원은 협력업체 대표가 챙겼다.
올해 3월 농협중앙회 한 지점에서 여신 담당 직원이 5년에 걸쳐 다수의 대출 건수를 취급하면서 대출금 과다 상정 등을 통해 약 109억원의 자금을 횡령했다. 현재 내부감사가 진행 중이다. 올 4월에는 한국투자저축은행 직원이 차주가 사업자금을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자금 집행 요청서를 허위로 작성해 고객 돈 15억4000만원을 횡령했다.
이달 우리은행 김해금융센터에서 기업 대출 담당 직원이 대출서류를 위조해 1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횡령했다. 빼돌린 돈의 대부분을 가상화폐와 해외선물 등에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직원은 구속된 상태이며 은행 손실액은 60억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 현장 검사에 인력 3명을 추가 투입해 총 9명의 검사 인력이 은행 내부통제 부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전날(20일)에는 금감원 은행 담당 임원이 검사 현장을 방문해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신혜주 한국금융신문 기자 hjs0509@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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