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직장인 박모(40)씨는 월급을 받으면 여윳돈을 저축은행 정기예금에 넣어 왔다.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높아 쏠쏠한 이자를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초만 해도 연 5%대였던 예금 금리가 올해 들어 3%대로 떨어지며 시중은행과 별 차이가 없어지자, 저축은행 예금통장에 넣어둔 돈을 모두 뺐다.
최근 저축은행의 예금 금리가 시중은행보다 빠르게 떨어지며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최대 1%포인트 높은 금리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5000억원대 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익성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예금 금리를 올리기 쉽지 않아졌다. 여기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건전성마저 악화하고 있어 금리 경쟁에서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21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전날 기준 저축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79개의 평균 금리는 연 3.66%다. 2022년 12월 5.53%였던 평균 금리는 1년 6개월 만에 1.87%포인트 내렸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같은 기간 연 4.08%에서 3.62%로 0.46%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다.
저축은행 정기예금 최고 금리는 연 4%로, HB저축은행이 판매하는 상품 두 개뿐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6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iM뱅크)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3.66%로, 최고 금리는 연 3.9%다. 이렇게 되면 저축은행의 평균 금리(3.66%)와 시중은행의 예금 최고 금리(3.90%)의 격차가 0.24%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금융 소비자들은 금리 매력이 떨어진 저축은행을 떠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저축은행의 수신 잔액은 102조9747억원으로, 1년 전인 지난해 4월보다 11조원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대출 잔액도 112조879억원에서 100조7456억원으로 11조가량 감소했다.
저축은행은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 때만 해도 6%대 특판 상품을 출시하며 시중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무리한 수신 금리 인상이 지난해 저축은행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 당국이 강도 높은 부동산 PF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최대 5조원가량의 손실이 예고되고 있다.
저축은행은 몸을 사리고 있다. 금융 당국의 압박에 여·수신 규모를 줄이고 충당금(떼일 것에 대비해 쌓는 돈) 적립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부실 채권 관리를 위해 대출을 보수적으로 내주고 있으며, 무리하게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어지자 수신 금리 경쟁에서도 손을 뗐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올해 최대의 과제는 건전성 관리다”라면서 “영업을 확대하기보다 기초체력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말 부실 자산이 많은 저축은행에 대한 경영 실태 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평가 결과에 따라 건전성이 낮은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인력·조직 운영을 개선하고 부실 자산을 처분하라고 권고하는 적기 시정 조치에 나설 수 있다. 적기 시정 조치를 받은 저축은행은 자산 건전화 방안이 담긴 경영 개선 계획서를 금감원에 제출하고 이행 점검을 받아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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