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안 받아요 QR 결제만 가능해요.”
해외로 떠나기 전 필수 과정이 있다. 바로 현지 화폐를 환전 하는 것이다.
환전 하려면 출국 전 은행이나 환전소를 방문해 현지 화폐로 바꾸거나 달러로 교환한 뒤 외국 환전소에서 교환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은행을 방문하기엔 시간도 여의치 않고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트래블월렛 카드를 발급받아 현지에서 ATM으로 출금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실물 카드를 발급받기엔 5~10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에 환전 없이 싱가포르로 떠나보기로 결심했다. 단 한 푼도 환전하지 않고 카카오와 네이버, 토스 등 페이 결제 앱과 한국에서 사용하던 체크카드 한 장만으로 출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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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서 QR로 간편하게… “한국이랑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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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비행을 마치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벗어나기 전 간편한 주전부리를 구매하기로 했다. 현지 화폐 없이 구매가 가능할까 걱정됐지만 계산대 위 익숙한 카카오페이 로고가 눈에 띄었다. 안심하며 초콜릿과 과자 등을 골라 계산대 앞에 섰다.카카오톡을 켜고 카카오페이 결제 화면을 열어 점원에게 내밀었다. 현지 점원은 낯선 페이 결제 플랫폼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카카오페이 로고 옆 알리페이플러스(Alipay+) 로고를 확인하고는 “알리페이면 된다”며 QR을 찍었다. 수월하게 결제가 이루어졌다.
직원에게 “이 페이는 한국 건데 사용이 가능하냐. 많이들 사용하냐”고 묻자 직원은 “알리페이라면 어디든지 대부분 사용 가능하다”며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알리페이는 중국의 알리바바그룹이 개발해 2004년에 출시한 전자화폐 시스템 및 온라인 결제 서비스다. 알리바바 산하의 핀테크 기업 앤트그룹은 2020년 글로벌 크로스보더 결제 솔루션 알리페이플러스를 출시했다. 크로스보더란 국경을 넘는 해외 결제 서비스를 뜻한다.카카오페이를 비롯한 국내 페이 결제 서비스 3대장 네이버페이와 토스페이는 알리페이플러스와 결합된 해외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사용방법도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고 간단했다.
결제 화면을 열고 사용 국가만 해외 현지로 전환하고 QR을 찍으면 된다. 별도 환전 없이 페이머니와 포인트로 결제가 되고 잔액이 부족할 경우 연동된 계좌에서 자동으로 충전도 된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해외를 찾은 사용자들이 환전의 번거로움과 현금 관리 불편함 없이 한국에서의 카카오페이 결제 경험 그대로 해외에서도 결제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와 유럽, 미주, 오세아니아 등 50여 개 해외 국가 및 지역과 결제 서비스를 연동 중”이라며 “결제처와 혜택은 지속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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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랜차이즈·자판기 ‘OK’… 로컬마켓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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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기준 알리페이플러스 이용이 가능한 국가는 57개, 가맹점 수는 8800만개다. 알리페이플러스 가맹점이라면 기존 현지 계좌로만 가능했던 알리페이 결제가 외국의 계좌로도 손쉽게 가능하다. 싱가포르에서도 KFC,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대부분의 글로벌 프렌차이즈들은 알리페이플러스와 연계된 한국 페이 서비스로 결제가 가능했다.싱가포르에서는 음식 주문과 결제가 모두 QR코드를 통해 이뤄졌다. 테이블마다 QR코드가 붙어있었고 이를 스캔해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까지 진행했다.
대면 주문과 결제는 아예 받지 않는 곳도 많았다. 싱가포르 현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카운터에서 주문은 안 되냐”고 묻자 “QR로만 가능하다”며 테이블 위에 붙어있는 QR을 가리켰다.
길가 자판기에서도 페이 결제가 가능했다. 오렌지주스를 즉석에서 짜주는 자판기에 카카오페이 화면을 가져다 대자 결제가 이루어졌다. 자판기에서 시원하고 신선한 오렌지주스를 받아들 수 있었다.그러나 한국의 페이 결제가 어디서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알리페이플러스가 이용 가능한 글로벌 프렌차이즈를 제외한 로컬 프렌차이즈, 가게, 마트 등은 대부분 현지 계좌가 없으면 페이 결제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백화점이나 일반 가게라면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해 크게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로컬 마켓이었다. 길거리에 위치한 로컬 마켓은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했고 현지 계좌를 이용한 QR결제만 가능했다.현금도 받지 않고 “Only QR!(오직 QR!)”만 외치는 곳도 있었다. 가게 주인에게 ‘왜 QR결제만 가능하냐’고 묻자 “카드는 기계가 없고 현금은 관리하기 번거로워 QR결제만 받는다”고 말했다. 노점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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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강국’ 싱가포르, 현금 없는 사회로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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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 없이 싱가포르를 갈 수 있냐’고 물으면 답은 ‘YES(예스)’다. 길거리 로컬 마켓을 이용할 수 없는 사소한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충분히 현지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싱가포르에서 생활이 가능했다. 오히려 현금이 있었으면 무용지물이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이는 싱가포르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에 앞장서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싱가포르는 2016년 현금 없는 사회를 선언했다. 선언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관련 사업에 2억2500만 싱가포르달러(약 2000억원)를 투자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2017년 7월에는 ‘페이나우'(Pay Now)라는 공인 디지털 결제 플랫폼을 도입했다. 해당 앱은 은행 계좌번호 없이 휴대폰 전화번호와 NRIC(싱가포르 주민번호) 번호만 있으면 자동 계좌이체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싱가포르 거주자와 기업의 80% 이상이 페이나우를 사용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버스와 지하철(MRT) 등 대중교통 비현금화도 추진 중이다. 교통비를 지불할 때 현금이 아닌 카드나 QR, 페이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결제해야 한다.
최근 많은 국가들은 현금 결제의 비중을 줄이고 카드와 페이 등 디지털 결제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디지털 결제가 일반화되면 돈의 흐름과 정보가 명확해져 부정행위나 돈세탁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조세 처리도 더욱 정확하고 간편해진다. 도난이나 분실에 대한 위험성이 낮고 지폐와 동전을 제작하기 위한 자원 낭비도 막을 수 있다.
김남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경제 전환에 따른 현금 없는 사회 환경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현금 없는 사회 진전으로 인해 다양한 전자적인 형태로 디지털 지급 수단 활용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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