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준 해시드(Hashed) 사장은 한국에서 가상자산으로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 꼽힌다. 지난 2017년 설립된 해시드는 가상자산 생태계 및 블록체인 기술 관련 기업이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투자해 큰 수익을 거뒀다. 해시드는 글로벌 가상자산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해시드의 영향력을 이용해 무리하게 특정 가상자산 ‘시장 조성’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한다. 루나와 테라USD(UST·테라) 관련 투자가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가상자산 관련 산업이 법적으로 회색 지대에 있을 때 나타나는 문제들이 해시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운용자산 4000억원… 네이버·SK·LG·하이브·크래프톤 등 투자
김 사장은 창업을 많이 했다. 서울과학고와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2008년 서울 대치동에서 수학학원을 차리는 사업을 시작했다. 같이 창업한 김용제 노리(KnowRe) 사장 등과 함께 교육 스타트업 사업을 하려면 먼저 교육 현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결과였다.
학원 사업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김서준 사장 등은 2012년 수학 교육 플랫폼 회사 노리를 세워 미국 공교육 시장 등에서 성공한 뒤, 2018년 회사를 대교에 팔았다. 이와 함께 김 사장은 한창 인기를 끌던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에 주목, ‘정오의 데이트’를 개발해 운영했고 ‘아만다’ 서비스 기획과 투자에 참여했다.
그가 가상자산 회사를 차린 것은 2015년 시작한 이더리움 투자가 ‘대박’을 치면서다.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의 2015년 내한 강연에 깊은 인상을 갖고 투자를 시작했다. 2015년 1개당 1000원이었던 이더리움 가격은 2017년 200만원까지 올랐다. 이듬해 20만원으로 폭락했지만 말이다.
김 사장은 이전부터 가상자산 관련 공부와 투자를 함께해온 5명과 함께 2017년 해시드를 창업했다. 그 가운데 김성호, 김태균 파트너는 해시드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홍성욱 해시드벤처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20년 8월 해시드 이사에서 물러났다가 지난 5월부터 감사를 맡고 있다. 박진우 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2021년 5월 대체불가능토큰(NFT)과 메타버스 관련 스타트업 오프(OFF)를 창업했다. 또 다른 공동 창업자 김휘상씨는 2020년 회사를 떠나 개인 투자자로 활동한다.
해시드는 지주회사격인 해시드, VC인 해시드벤처스, NFT 관련 사업을 하는 해시드스튜디오의 3개 회사로 구성돼 있다.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해시드랩스를 한때 일시적으로 운영했다. 해시드 지분은 김 사장이 82.2%를 갖고 있고 김성호 파트너와 김균태 파트너가 각각 11.2%, 6.5%를 보유하고 있다.
2017년 자본금 6억원으로 출발한 해시드는 다양한 가상자산과 발행 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1년 만에 운용자산을 2500억원 규모로 불렸다. 카카오의 클레이튼, 네이버 계열사 라인의 링크 등을 비롯해 이오스(EOS), 온톨로지, 아이콘, 코스모스코인 등에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상자산 발행 프로젝트에 투자하면서 동시에 ICO를 전후로 해당 가상자산을 대규모로 매입하는 방식을 주로 취했다.
2020년 설립된 해시드벤처스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상자산·블록체인 전문 VC다. 가상자산 가격이 폭락하기 직전 운용자산(AUM)은 4000억원 규모다. 2020년 9월 결성된 1호 펀드는 1200억원 규모로 네이버(80억원), 카카오(40억원) 등이 투자해 화제를 모았다. 같은 해 12월 결성된 2호 펀드는 2400억원 규모로 SK, 네이버, 크래프톤, 위메이드, 무신사, 하이브 등이 투자했다.
해시드벤처스의 대표적인 투자처는 ▲이더리움 기반 탈중앙화 파생상품 거래소 디와이디엑스(dYdX) ▲블록체인 게임회사 미씨컬게임즈(Mythical Games) ▲NFT 플랫폼 리큐어(Recur) ▲NFT 자산을 관리하는 NFT뱅크 ▲미국 최대 비상장 주식투자 플랫폼 리퍼블릭(Republic) 등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해시드의 지난해 투자 금액은 총 1540억원으로, 국내 VC 중 10번째로 많다.
◇ ‘시장조성자’ 꼬리표
해시드는 초기 단계의 가상자산 관련 기업을 잘 성장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가상자산 발행 기업의 경우 해시드는 유망한 자산임을 알리고, 투자 수요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시장조성자 역할에서 탁월하다.
김균태 파트너는 “정말 다양하게 투자받은 회사를 도와준다”며 “비즈니스 네트워크 소개, 토큰(가상자산) 모델 고민, 좋은 개발자 소개 등 다각도로 지원을 해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가상자산 업황이 얼어붙고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해시드의 이런 역할에 순기능만 있는지 의구심을 던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서준 사장과 해시드가 루나-테라가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해시드가 사들인 루나 코인 수량은 3000만개 정도로 전해졌다. 한 때는 전체 발행 물량 대비 보유 비율 등에 따라 배분하는 투표권을 3.59% 갖고 있었다.
해시드는 이 밖에도 관련 사업에 활발히 투자했다. 테라 코인을 또 다른 사용자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종의 개인간거래(P2P) 금융 서비스인 ‘엣지 프로토콜(Edge Protocol)’의 첫 단계(시드) 투자를 주도했다. 초창기 테라 발행 및 운영을 맡았던 ‘테라’는 2018년 처음으로 유치한 360억원의 투자사에 해시드가 포함되어있다고 발표했었다. 2021년 7월 테라는 1억5000만달러(2000억원) 규모의 테라 생태계 펀드 투자사 중 하나로 해시드를 소개했다. 또 자사 블로그에서 “테라의 첫 파트너인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라는 표현을 써가며 해시드와의 인연을 과시했다. 해시드는 테라의 운영사로 알려져있는 테라폼랩스와의 관계에 대해 “테라폼랩스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김 사장도 루나 투자를 통해 한때 막대한 평가이익을 거뒀다. 그의 가상자산 지갑(계좌)을 보면 김 대표가 보유한 루나 코인의 가치는 한때 약 4조원가량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루나 시총이 99% 날아가자 루나 코인 가치는 70억원대로 떨어졌다.
◇ 투자 수익 세무조사 무혐의로
김 사장을 비롯한 해시드 창업자들의 가상자산 투자 방식도 논란거리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해 12월 기업 대상 특별 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을 투입해 해시드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했다. 가상자산 투자 과정에서 김 사장과 해시드가 탈세를 하지 않았는지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해시드 등에 따르면 국세청 조사에서 해시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가상자산 업계 일각에서는 무혐의를 받게 된 과정에서 드러난 가상자산 투자 구조와 해시드와 김 사장 등의 관계가 추가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해시드는 “김 사장과 파트너(창업에 참여한 사내이사)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전자지갑을 통해서 가상자산을 거래한 것으로 개인 자격의 투자였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고위 임원들이 개인 자금을 운용했을 뿐, 해시드는 가상자산을 매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개인이 가상자산을 매매해 수익을 내는 것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고위 임원들이 위와 방식으로 가상자산 매매를 한 것에 대해 ‘법인은 가상화폐에 투자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고위 임원들이 개인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게 해시드 측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김 사장은 해당 투자와 관련해 “해시드는 암호화폐에 투자를 집행하는 법인이 아니라 리서치 기관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와 창업자들이 개인 돈으로 가상자산 매매와 관련 투자를 과정에서 해시드 소속 직원들이 투자 수익성 검토만 해주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거둔 수익은 해시드 인건비와 투자금으로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막은 현행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만, 몇조원 규모의 수익에도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 구조를 사전에 기획한 것이 정상적이냐는 것이다.
향후 배임 혐의도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고위 임원들이 회사의 인력과 자원을 활용해, 회사가 거둘 수 있었던 이익을 개인 명의로 돌린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특별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대한 법률에 따르면 배임에 의한 이득 금액이 각각 5억원 또는 50억원 이상인 경우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자 3명이 지분 100%를 가진 개인 회사인 해시드에서 배임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사실상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배임의 피해자는 통상 주주인데, 최대 주주가 김 사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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