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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내 농산물·식료품 물가가 해외에 비해 높으며 유통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데 대해 주무 부처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농업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은이 노동시장과 최저임금을 비롯해 구조 개혁 이슈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통화 당국과 정부 부처가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다.
송 장관은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농산물 수입과 유통 구조 개선 등 한은이 최근 보고서에서 제안한 것들은 정부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이며 (한은의 분석은) 농업 분야의 특수성과 국가적인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물가 중심으로만 단선적으로 본 것으로 판단된다”며 “(한은이 인용한) 데이터 자체도 정밀한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은은 전날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인텔리전스유닛(EIU)의 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의식주(의류·신발·식료품·월세) 물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55% 높았다고 밝혔다. 돼지고기와 감자, 티셔츠, 남자 정장 등의 물가는 OECD 평균의 두 배를 넘었다. 한은은 이를 바탕으로 농산물 수입 확대와 유통망 개선 같은 근본적인 구조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통화정책만으로는 높은 생활물가를 잡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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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장관은 “EIU 데이터는 33개국 주요 도시의 생활비를 바탕으로 하는데 각국의 소득 수준 등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한다”며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 집중된 우리나라의 경우 물가가 과대 추정될 수 있고 언제 조사했느냐에 따라서 데이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면 우리나라 농식품 물가 수준은 OECD 38개국 중 19위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송 장관은 농산물의 경우 생산성과 개방도가 낮아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는 한은의 주장에도 반박했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는 (공급망 다변화에) 동의하지만 수입을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격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총재는 “농산물 가격이나 이런 것에 대해 한은도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며 “의견을 내놓고 각 기관이 정책 수단으로 독립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정보를 막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 총재가 한은의 싱크탱크화를 주문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정부와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은 이날도 혁신도시 정책이 지역경제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날을 세웠다. 특히 혁신도시가 10곳으로 흩어지며 투자가 분산됐다고 짚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은은 공급을 포함해 정부 정책까지 감안해 통화정책을 하는 게 바람직하며 이를 굳이 외부에 공개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만 해도 정부 정책에 직접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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