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화국의 사위’ ‘노태우의 후광’은 SK그룹이 성장하면서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대법원에 의해 수천억 원에 달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기업 비자금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1997년 4월 17일에도 모든 비난은 선경(현 SK)으로 향했다.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검찰의 선경을 향한 강도 높은 조사는 연일 계속됐으며 SK그룹의 모든 경영 성과는 노 전 대통령과 그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몫으로 평가절하됐다.
하지만 당시 공정위 자료, 대법원 판결문 등에 따르면 과연 SK그룹이 노태우의 후광을 받은 기업인지 의구심이 든다. 6공화국의 영애와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히려 큰 짐을 지게 됐다는 것이 SK그룹 측 주장이다.
1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임기(1988년 2월~1993년 2월) 동안 SK그룹 매출 증가율은 77% 수준이다. 5년간 괄목한 만한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당시 10대 그룹과 비교하면 SK그룹은 최하위 성장률을 기록했다.
1위는 대우그룹으로 5년간 매출 성장률 334%를 보였다. 이어 기아(295%), 롯데(169%), 현대(152%), 쌍용(135%), 한진(113%), LG(107%), 한화(79%) 순이다. SK는 10대 그룹 중에서는 9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최하위는 당시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대규모 혁신을 하고 있던 삼성이 -1%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차지했다.
이 기간 SK그룹 자산 증가율은 246%에 달하는데, 이 역시 기아(330%)보다는 낮은 수준이며 삼성(235%), LG(211%), 한화(205%), 롯데(197%)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SK 재계 서열이 노태우 정권 동안 7위에서 5위로 오른 것을 두고도 특혜의 의혹이 제기됐다. 이 역시 다소 과장이 섞였다. 1992년 대한민국 재계는 현대, 삼성, 대우, LG 등 이른바 빅4로 정리됐다. 당시 재계 서열 1위였던 현대의 자산 총액은 23조116억원이었으며 4위인 LG는 17조원을 넘어섰다.
5~7위 재계 서열은 눈을 뜨면 바뀌는 수준이었다. 재계 5위 SK의 자산 총액은 8조6510억원이었으며 7위인 쌍용은 6조8960억원으로 2조원도 채 차이 나지 않았다. 반면 4위와 5위 간 격차는 2배에 달한다.
노태우 정권이 선경을 밀어줬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문을 보고 재고(再顧)할 필요가 있다.
1997년 대법원 판결은 당시 국내 대기업이 노 전 대통령에게 얼마의 뇌물을 줬으며 무엇을 요구했는지 상세하게 명시했다.
삼성 250억원, 현대 250억원, 대우 240억원, LG 210억원, 한진 170억원 등 국내 대기업 중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지 않은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내용은 ‘각종 국책사업자 선정, 금융, 세제 운용 등 기업 경영과 관련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다른 경쟁 기업보다 우대하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하여 달라는 취지’로 기재됐다.
선경 역시 150억원을 청와대에 상납했으며 청탁 내용은 다른 대기업과 같다. 판결문에 따른다면 이들 모두가 뇌물과 청탁을 통한 6공화국의 후광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된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과 연결 지으면 노 관장은 사실상 국내 모든 대기업에 대해서 일정한 지분을 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6공화국의 후광은 그 자녀에게 상속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SK그룹 측은 1997년 외환위기, 2004년 소버린 사태를 이겨내고 다양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기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한 모든 과정이 지금의 SK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 성공과 함께 자산 총액 334조원의 국내 재계 2위 기업이 될 수 있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3일 ‘구성원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우리 그룹의 성장은 비정상적인 자금 지원이나 특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며 “수많은 구성원의 패기와 지성, 노력과 헌신으로 쌓아올린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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