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60년을 돌아보니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옛날부터 알았던 일가친척처럼 느껴져요. 제 안의 사랑 그릇이 넓어진 거죠.”
백발의 이해인(79) 수녀는 수녀원 입회 60주년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1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신간 ‘소중한 보물들'(김영사) 출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이번 신간은 이 수녀가 반세기 넘게 써온 일기와 메모·칼럼을 추리고, 신작 시 10편 등을 묶었다. 60년 동안 단상을 적은 메모장만 해도 184권이라고 했다.
이 책에는 어머니의 편지부터 사형수의 엽서, 수녀원 종탑·텃밭, 동백꽃 등에 얽힌 이해인 수녀만의 사연이 차곡차곡 담겼다. 그는 새 책을 낸 이유와 관련해 “수녀원에서 60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내가 지녔던 손수건이나 수첩 등에 얽힌 이야기를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해인 수녀에게 보물은 뭘까.
“저는 모든 사람을 보물로, 하루하루를 보물이 묻혀 있는 바다로 생각해요. ‘보물 캐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요. 함께 사는 저희 수녀들이야말로 소중한 보물이에요. 애착하는 것 중엔 광안리 바닷가의 조가비와 수녀원에 떨어지는 솔방울이 있죠.”.
이 수녀는 가끔 바닷가 백사장에 가서 조가비를 주워 온다. 햇볕에 말린 뒤 그 위에 성경 구절을 적어, 그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선물로 준다고 했다. 솔방울을 모으는 까닭도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다.
◇ “신발 신는 것 자체가 희망…나도 매일 죄지어”
그는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수십 차례 항암 주사를 맞고, 방사선 치료를 견디며, 대장 30㎝를 잘라냈다고 했다. 몇 해 전엔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대수술도 했다.
이 ‘고통’의 시간을 견디면서 “신발을 신는 것 자체가 희망이니, 살아 있는 동안 절망에서 피어난 희망을 안고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고 이해인 수녀는 말했다.
수도 생활 60년 동안 가장 괴로웠던 때는 언제였을까. “동료 수녀를 향한 미움이나 분노가 해소되지 않고 용서가 안 될 때 제일 괴로웠어요.”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라도 자신이 먼저 다가가 화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랑을 거스르는 모든 것이 죄라고 배웠다”며 “동료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죄이기에, 저는 죄를 안 지은 날이 없다”고 고백했다.
◇ “20대로 돌아간다면 다시 수녀?…이 길에 후회 없어”
이해인 수녀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 수도자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 문에 처음 들어선 때가 1964년. 시곗바늘을 60년 전으로 돌린다면 어떨지 물었다.
“그때로 돌아가 봐야 알겠죠(웃음).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다만 20대로 돌아간다면 머리에 물들이는 건 하고 싶어요. 귀걸이·목걸이·파마 한 번 못 해보고 수녀원에 갔으니까요.”
간담회 말미, 그는 우리 시대가 가져야 할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조금만 더 남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말도 곱게 하면 좋겠고요. 사람은 이기심의 감옥에서 벗어나 이타심의 삶을 살 때 행복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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