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물가를 제대로 잡기 위한 해결책으로 ‘농산물 수입, 공공요금 정상화’를 꺼내들었다. 한은은 물가 상승률 2%를 목표로 통화정책 방향을 운용한 결과 인플레이션이 하향 안정화 기조로 흘러가고는 있지만 통화정책만으론 주요국 대비 유독 한국만 널뛰는 생활 물가를 대응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결국 정부의 정책 변화와 함께 구조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으로 총선 이후 약화된 정부의 구조 개혁 추진 동력에 불을 붙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8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우리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초 5.0%에서 올해 5월 2.7%로 낮아졌지만 국민들께서 피부로 잘 느끼시지 못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한은 조사국이 이날 발표한 ‘BOK 이슈노트-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은 이 총재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국의 물가수준을 주요국과 비교해보면 전체 물가수준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 평균 정도이지만 의식주 비용은 더 높고 공공요금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식료품 물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식료품 물가는 OECD 평균(100%)보다 56% 비쌌다. 의류와 신발은 61%, 주거비도 23% 높았다. 반면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36% 낮았다. 대중교통 등을 포함한 공공요금도 27% 낮았다.
격차는 더 심화되는 추세다. 농축산물 가격은 1990년 OECD 평균의 1.2배 수준에서 2023년 기준 1.5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공공요금 전기·도시가스,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의 경우 1990년 OECD 평균의 0.9배 수준에서 최근 0.7배 수준까지 낮아졌다.
한은은 기현상의 원인을 △낮은 생산성·개방도(과일) △거래비용(농산물, 의류) △정책지원(공공요금)으로 짚었다. 품목별 구조적인 요인들이 물가 수준을 끌어올린 만큼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향후 고령화로 재정여력은 줄어드는 반면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차질이 생활비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큰 만큼 농산물을 수입해 공급채널을 다양화하고 공공서비스 공급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공공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구조 개혁이 이뤄져 한국의 식료품 가격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가계의 소비여력이 평균 약 7%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공공요금 정상화를 통해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일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소비여력 감소분(3%)을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한은이 제시한 구조 개혁은 통화정책 운용만으론 어려운 일이다. 결국 정부의 정책 변화와 함께 구조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선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사과 등 농산물 수입에 적극적이지 않은데 이러한 정책들로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알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물가상승률 컨트롤을 통해 물가안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물가 수준을 결정하는 건 여러 구조적 요인이 함께 있기 때문에 한은 입장에서 의견과 정보를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어떤 속도로 어떤 정책을 취해 추진할 것인지는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지호 조사국장은 전날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오는 8월 말까지 두 달 더 연장하되, 인하 폭을 축소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정부에서도 유류세 인하폭 축소를 결정했는데 앞서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긍정적인 신호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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