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에는 끝이 있다. 여러분도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면, 본질과 비본질을 바로 구분할 수 있다.
18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열린 책 ‘소중한 보물들’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인 수녀는 불안에 떠는 현대인들에게 “암 투병하면서 숨 쉬는 거 자체가 희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침에 나갈 때, 신발을 싣는 행위 자체가 희망”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소중한 보물들’은 수녀원 입회 60주년을 기념한 이해인 수녀의 단상집이다. 그는 1945년에 태어나 1964년 수녀원에 들어갔다. 이 책에는 그로부터 60년의 세월 동안 그가 만났던 사람과 자연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정멜멜 사진작가가 찍은 이해인 수녀의 반짝이는 일상도 볼거리다.
60년의 세월을 수도자이자 시인으로 산 그는 간담회 내내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동료 수녀님 등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 내가 아무리 신앙이 있어도 동료의 육신이 한 줌 뼛가루가 되는 걸 보면 감당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언젠가 저 길을 갈 텐데’라고 생각한다. 친정어머니가 95세에 돌아가셨다. 죽은 뒤에 부모님 곁에 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라며 “죽음이 삶 속에 가까이 있다.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인생을 회고할 때, 가장 후회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본의 아니게 얼굴이 알려지면서 말도 없이 수녀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한 적도 있었다. 그게 참 후회가 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해인 수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 다시 그 사람을 찾아간 적도 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분이 엄마를 졸라서 날 보러 왔다. 내가 바빠서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 형식적으로 대했다”라며 “그게 자꾸만 생각나 연락처를 알아내 그를 찾아갔다. 날 보더니 너무 행복해하더라. 역시 사람은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라며 웃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해인 수녀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하나 공개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수녀원 삶을 시작하기 전, 1960년대 초반 경주에서 열린 한 문학 행사에서 작문으로 1등상을 받았다.
그는 “오래 전 한 행사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와 내게 ‘수십 년 전의 소녀를 만나러 왔다’고 말하는 거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내가 1등상을 받았을 때, 3등상을 받은 소년이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할아버지는 ‘내 생에 소녀를 다시 만나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내가 사진도 찍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니 몸이 불편해 빨리 가야 한다고 하더라. 가끔 그 남학생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사람이 나이 들면 동화를 쓰고 싶어진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 요즘이다. 매일 나는 인생의 노을빛 여정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는 시간을 보낸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그는 망설임 없이 “동화를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린 왕자’ 같은 동화를 써보고 싶은데, 능력이 없어서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위에서 내가 PD를 했다면 잘했을 것 같다고 하더라. 내가 매일 ‘꽃이 참 아름답죠’, ‘저 푸른 바다를 좀 보세요’라는 말만 하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 같은데, 내가 사실 기획을 잘한다”라며 웃었다. 실제로 그는 수녀원에서 잡지를 창간하고, 홍보실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기획 업무를 하기도 했다.
간담회 끝에 그는 세상이 변해도 잃어서는 안 될 가치로 ‘이타심’을 꼽았다. 그는 “우리 가족이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 셋방살이를 했는데, 집주인이 우리를 정말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했다. 그런 영성을 사람들이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내 가족도 소중하지만,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이타적인 마음 말이다. 조금만 더 남을 생각하면서 말을 곱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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