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남해인 윤주현 기자 = “지하에 젊은 애기(아기) 엄마 사는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얼마나 잠길지 모를 텐데 어째. “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3동의 한 다세대주택 앞. 이곳에 사는 80대 여성 이 모 씨는 침수 대비용 물막이판이 없는 반지하 주택 창문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며 말했다.
20년 동안 상도3동에서 살았다는 이 씨는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반지하 주택들이 물에 잠기는 걸 목격했다며 “물난리가 심했는데도 아직도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고 혀를 찼다.
이 씨가 거주하는 곳은 환경부의 ‘홍수위험지도’의 도시침수지도상 침수심 1~5m 이상의 침수 위험이 심각한 동네다. 2022년 8월에는 폭우로 이 인근 반지하 주택이 잠겨 50대 여성이 사망했다.
올여름 기상이변으로 인해 평년보다 더 심한 폭우가 예상되지만 이전에 침수 피해를 겪은 지역의 반지하 방들에 물막이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도3동 일대 골목을 살펴본 결과 설치된 집은 10곳 중 3~4곳꼴로, 설치되지 않은 집이 더 많았다. 한 골목에서도 설치되지 않은 집과 설치된 집이 섞여 있었다.
2022년 8월 폭우로 도림천이 범람해 일가족 3명이 반지하 주택 침수로 사망한 관악구 신림동도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집이 허다했다.
특히 낡은 구축 다세대주택들의 창문은 지면에 붙어있다시피 해 침수에 매우 취약한 구조였다.
신림동 통장을 역임했던 진 모 씨(76)는 한 구축 다세대주택을 가리키며 “저지대에 있는 데다 구옥들은 방수가 잘 안돼서 물막이판이 없으면 더 큰 문제”라며 “비가 많이 오면 문제가 될 집들이 많다”고 말했다.
침수 피해가 발생한 뒤 자치구에선 물막이판을 무료 설치해 준다는 전단을 돌리고 방문 홍보 활동도 했지만 집주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청하지 않는 분위기다.
물막이판을 설치하면 ‘이곳은 침수 지역’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꺼린다는 게 침수지역 주민들과 자치구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상도3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60대 여성 A 씨는 “물막이판이 딱 설치돼 있으면 ‘여기는 물 들어가는 집이에요’ 하는 것 같아서 안 하는 집도 있고, 집주인이 직접 신청해야 하니까 귀찮아서 두는 집도 많다”고 전했다.
신림동을 관할하는 관악구청 관계자는 “물막이판을 설치하면 침수 주택이라고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감이 집주인들 사이에서 있다”며 “집주인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고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반지하 거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물막이판 설치 의무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서울시 지하 주택 침수 방지용 물막이판 설치 확대 방안’ 정책보고서는 “물막이판 설치 의무화는 신규·대형 건축물만을 대상으로 한정해 소규모 지하 주택은 대상 건축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침수 발생 우려가 높은 지역에 위치한 지하 주택 임대 시 임대차계약서에 물막이판 설치와 확인 조항을 포함하는 등 의무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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