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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보기] 역지사지를 버리고 언행일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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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논설위원
정숭호 논설위원

같이 살려면, 조화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역지사지’는 버리고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삶의 좌우명으로 삼으십시오. 다른 이들과 ‘같이 살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려는 분들은 자신만 생각하십시오. 언행일치의 삶을 사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지 않아도 잘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나도 여러분처럼 오랫동안 삶의 태도에 관한 수많은 가르침 중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네 것)만 생각하기 전에 남(남의 것)도 생각해 봐라”, “네가 그 처지가 되어 봐라”라는 ‘역지사지’야말로 지구 위 모든 인간관계를 부드럽고 원만하게 돌아가게 하는 만능의 윤활유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서양사람들이 역지사지를 ‘남의 신발 신고 걸어가기’로 표현한 걸 보면 역지사지는 사실 불가능한 일임을 알려주려는 것 같다.
서양사람들이 역지사지를 ‘남의 신발 신고 걸어가기’로 표현한 걸 보면 역지사지는 사실 불가능한 일임을 알려주려는 것 같다.

‘역지사지’의 효능, 기능을 얼마나 좋게 보고 높게 믿었던지 더 많은 사람이 억지로라도 역지사지하라고 ‘억지사지’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11년 전인 2013년의 일인데, 매주 한 번씩, 쉰네 번을 쓰고는 1년 만에 연재를 끝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역지사지는 불가능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친구의 대화체로 쓴 마지막 ‘억지사지’에 역지사지가 왜 어려운지 들어 있습니다. 그 칼럼 일부를 정리해 옮기겠습니다.

나=그런 점에서 역지사지는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 탑 파이브 안에 들 것 같은데? 어쩌면 탑일지도 모르겠네.

친구=하지만 역지사지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것 또한 없을걸? 처지 바꿔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처지를 바꾸기는 어려우니까.

나=원래 그런 거 아닌가? 서양에서는 “남의 신발 신고 1마일 걸어봐라”라는 말이 역지사지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는데, 남의 신발 신고 1마일은커녕 100미터 가기도 쉽지 않지. 작은 신은 발 아파서, 큰 신은 헐거워서 제대로 걷겠어? 그만큼 역지사지는 어려운 거야.

친구=역지사지는 먼저 역지사지하려는 사람에게 손해가 될 수 있으므로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도 가능하지. 역지사지는 먼저 양보한다는 뜻일 수도 있을 터인데, 남의 양보만 달랑 받아먹고 모르는 체하는 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는 걸 보면 틀리지 않잖아? “오죽하면 그랬겠냐?”라는 소위 ‘내재적 접근법’도 역지사지의 다른 표현이겠지만 이게 자칫하면 상식과 도덕으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행위도 눈감아 줘야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지.

‘억지사지’는 내가 만든 말이지만 ‘억지로라도 처지 바꿔 생각하기’를 나보다 먼저 생각한 사람은 영국 풍자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입니다. 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언제나 서로 못 잡아먹어 날뛰는 정치인들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 ‘반대에 찬성하기’를 제시했습니다. 말 그대로 어떤 이슈에 어떻게 반대하든 표결할 때는 반대하는 것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하는 게 반대에 찬성하기입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 스위프트 선생은 아예 정치인들의 뇌를 섞어버리는 뇌수술을 도입할 것을 주장합니다.

“정당들이 서로 격렬한 싸움을 할 때 각 정당에서 백 명의 지도자를 뽑아 머리 크기가 비슷한 사람끼리 짝을 짓게 한다. 그런 다음 외과 의사들에게 이들의 뇌가 거의 절반으로 나누어지도록 머리를 자르게 한다. 다음엔 잘라낸 머리를 반대편 정당 사람의 절반 남은 머리에 붙인다. 이렇게 하면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두개골 속에서 논쟁을 벌이고, 곧 서로 이해하게 돼 세상을 다스리고 감독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머리에서 국민이 오매불망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난다. 각 정당을 이끄는 지도자들 두뇌의 양이나 질의 차이는 완전히 무시해도 좋다.” 스위프트 선생이 이렇게까지 극단적 억지사지를 생각한 것은 역지사지가 그만큼 어렵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들이 모두 ‘말한 대로 행동한다’면 역지사지는 필요 없다. 거짓과 과장이 없는 곳에서는 처지를 바꿔 볼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모두 ‘말한 대로 행동한다’면 역지사지는 필요 없다. 거짓과 과장이 없는 곳에서는 처지를 바꿔 볼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언행일치의 삶을 산다면 역지사지는 필요 없을 겁니다. 역지사지는 분쟁, 갈등의 상황에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갈등과 분쟁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언행일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언행일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기와의 약속이건, 남과의 약속이건 반드시 지키려 노력합니다. 당장 못 지키면 나중에라도 지키려 노력합니다. 약속을 지키는데 무슨 분쟁이나 갈등이 일어나겠습니까. 이들에게는 역지사지가 필요 없습니다.

같은 말이지만, 언행일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입니다. 자기가 한 말을 뒤집는 사람이 없는 사회, 여기서 한 말 다르고 저기서 한 말 다른 사람이 없는 사회입니다. 언행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는 성숙하고 조용한 사회입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려면 약속하기 전에 그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깊이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약속을 덜 하게 되고 말을 덜 하게 됩니다. 조용한 사회가 되고 속 깊은 사람이 많은 사회가 되는 겁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언제나 시끄러운 한국이 싫은 분들은 역지사지도, 억지사지도 버리고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한국은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데일리임팩트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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