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 “근원물가 안정” 강조하지만
“섣부른 인하로 정책 비용 발생 우려”
“물가·고환율 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국은행이 현재의 통화정책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됐다며 반박에 나섰다. 물가 상승률이 최근 들어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여전히 불안정하고,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KBS 방송에 출연해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는 물가지표인 근원물가 상승률이 최근 안정되고 있고, 다른 국가도 금리를 인하하는 상황”이라며 “이미 상당 부분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에 3.1%에서 4월 2.9%, 5월 2.7%까지 하락했다”며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 물가 상승률은 2.2%까지 떨어져 통화정책 상에서는 금리 인하 환경으로 바뀐 건 맞다”고 덧붙였다.
근원물가지수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핵심 지표 중 하나다. 지난달 근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해 4월(2.3%)보다 안정됐다는 평가다.
성 실장의 말대로, 최근 유럽의 일부 국가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 스위스중앙은행은 지난 3월 금리를 내렸고, 스웨덴과 캐나다도 각각 지난달과 이달 금리를 낮췄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이달 초 약 5년 만에 금리를 인하했다.
성 실장은 “이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물가 안정이 더 돼 있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지금 충분히 (인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리 인하 전망이 제기되는 미국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라며 “한국은 이미 상당 부분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내수 회복의 키는 물가 상승률”이라며, 향후 물가가 안정되고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로 이어질 경우 내수 경기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성 실장의 이같은 발언은 결국 정부가 중앙은행에 대외적으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앞당길 것을 압박한 셈이다. 그러나 한은은 줄곧 기준금리 인하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창립 제74주년 기념사에서 “완화 기조로의 섣부른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 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며 “물가가 목표 수준(2%)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근원물가가 2%대에 있다 해도 통화 당국 입장에서는 이 같은 기조가 지속되는지 최소 3개월은 지켜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유럽 국가들이 기준금리를 내렸다 해도 한국이 바로 따라갈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성장률 전망이 0%대인 유럽과 달리 한국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1.3%를 기록해 금리 인하 명분이 약하다는 이유다.
만약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면 2%포인트인 역대급 금리차가 더 벌어지고, 이 경우 환율 급등과 외인 자금 이탈, 수입 물가 자극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때문에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위해선 물가와 환율이 안정세에 접어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소비자물가 증가율은 두 달 연속 2.7%로 내려왔지만 고환율과 지정학적 분쟁에 안심하긴 이르다는 평가다.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하락) 수입물가가 오르고, 수입물가가 국내물가를 전반적으로 밀어 올려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총재도 앞선 창립사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물가, 환율 등 다양한 상충 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한-미 간 정책금리는 미국이 한국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 등 대외 여건을 고려할 때, 한은의 금리 인하 속도는 미 연준보다 빠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여전한 우려, 높은 부채 수준에 대한 경계, 한미 금리 격차의 정상 수준 확보 등의 동결 필요성으로 금리 인하 시작 시기와 속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연준에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움직이기 보다는 한동안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미 연준이 이르면 9월 이후 1~2차례 인하하게 되면, 한은은 이르면 3분기 말(8월), 늦으면 4분기(10~11월) 1차례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하반기 인하 확신이 유지되는 가운데 환율만 1300원 초반대로 빠져준다면 연준의 9월 인하 기대를 전제로 한은이 8월 선제적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물론 미국의 지표 상황 등이 받쳐주지 않으면 한은도 10~11월로 인하를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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