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5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남북 정상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났다. 이번 만남은 분단 이후 처음 이뤄진 것으로 이들은 함께 ‘6·15 남북공동선언문’을 발표하며 남북의 ‘평화통일’ ‘경제협력’ ‘이산가족 상봉 추진’ 등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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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 역대 처음 만났다… 선언문에 어떤 내용 담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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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문’은 6월15일의 만남을 ‘역사적인 상봉’으로 규정하며 시작한다. 선언문에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숭고한 뜻에 따라 2000년 6월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고 정상회담을 가졌다”며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적혀있다.
해당 선언문에는 남북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 5개 조항 ▲자주통일 ▲협력통일 ▲이산가족 상봉 추진 ▲경제협력 ▲추후 대화 개최 등에 대해 남과 북이 합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항목별로 보면 ‘제1항’과 ‘제2항’에는 통일문제가 언급됐고 ‘제3항’과 ‘제4항’에서는 인도적 문제 해결 합의 내용이 담겼다. ‘제5항’에서는 남북 교류 확대를 약속했다.
아래는 ‘6.15남북공동성명’에 실린 5개 조항의 전문이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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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 ‘개성공단 사업 시작’… 6.15선언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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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주요 합의 내용에는 ▲자주적 통일 ▲통일 방안 논의 최초 시도 ▲ 8.15 이산가족교환 방문 ▲민족 경제의 균형 발전과 적극적 교류 협력 약속 등이 담겼다.
남북은 이러한 합의 사항을 실천하기 위해 남북공동회담 이후에도 ▲당국간 대화지속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방한 수락 등을 약속했다. 이후 후속 조치를 이행하기 위한 남북한 장관급 회담도 3차례 연속으로 열렸다.
해당 성명을 통해 민족 균형적 발전 차원 문제가 논의되면서 경의선 복원 사업(서울∼신의주와 문산∼개성 사이 도로를 잇는 사업)이 착공됐다. 아울러 개성공단과 임진강 공동 수방 사업도 시작됐다.
2000년 8월15일 광복절에는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남북한은 이후 11월30일에 진행된 제2차 이산가족 교환 및 상봉 계획도 추진했다. 이후 이산가족상봉은 노무현 정부 때까지 순조롭게 이어지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 핵 개발 재개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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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50년 만에 성사된 만남…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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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의가 개최된 데는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햇볕정책’의 공이 컸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시작한 햇볕정책은 남북한의 긴장관계 완화와 북한 개방을 위해 시행된 대북한 정책을 말한다.
김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정치·군사 갈등으로 북한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교훈 삼아 민간을 중심으로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평화와 화해·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목표로 내세운 자신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이라 명명하고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한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햇볕정책 시행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이 성사되면서 남북 경제 협력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은 김영삼 정부 시절 끊겼던 남북당국간 대화 채널이 1998년과 1999년에 복원되는 등 긍정적 변화를 낳았다. 이 외에도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 경제회복 지원 ▲한반도 냉전 종식 ▲이산가족 문제 해결 ▲남북한 당국 간 대화를 선언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지속적인 노력 끝에 김대중 정부는 2000년 4월8일 북한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평양에서 만나 6·15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믿음을 쌓아 협력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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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오물풍선’ ‘GPS교란’ 등으로 다시 악화되는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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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북공동회담에서 굳건히 약속한 ‘남북간 신뢰와 협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주장하는 정부와 핵 개발을 재추진한 북한이 갈등을 빚으면서 남북관계는 또 다시 경색됐다.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2009년에는 북한이 로켓 발사와 핵실험에 나섰다. 2010년에는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는 ‘최악’의 국면을 맞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 의사를 보였다. 이후 ‘3차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는 듯했으나 2020년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관계는 다시금 냉랭해졌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에는 정부가 국방백서상 북한을 ‘주적’으로 표기하고 ‘한미연합훈련’을 강화하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남한을 향해 1610여개 이상의 오물풍선을 살포하고 GPS교란을 시도하는 등 남한에 적대적인 태세를 보였다. 이에 맞서 정부가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가운데 지난 9일에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무단으로 침범해 군 당국이 경고사격에 나섰다.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관계가 거듭 악화되는 가운데 2000년 6월15일 남북이 평화적으로 이뤄낸 ‘그날’의 약속이 흐릿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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