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은데, 한국에선 한국 건축가들이 제대로 설계· 건축할 기회를 갖지 못해요. 오히려 나 같은 외국인에겐 기회를 주고요. 이상해요.”(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顯)
올 3월, ‘건축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받은 야마모토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다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언급하며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거의 외국 건축가 작품이다”고 했다.
이처럼 외국인 건축가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수도인 서울에서는 ‘한국 건축의 색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웃 도시 일본 도쿄가 ‘건축 명소’가 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 韓 청년 건축가 사로잡는 日…“건축의 역할 보여준다”
건축은 사람이 생활하는 건물을 짓는 일인 동시에 한 사회를 보여주는 집합체다. 건축을 두고 사회·문화·공학이 결합한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다. 일본 도쿄는 건축의 다각적 기능을 잘 보여주는 대표 도시다. 건축학도라면 방문을 소원한다.
도쿄의 유명 건축물은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다. 서울의 종로를 연상케하는 아사쿠사 중심에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센소지’(628년)가 있다. 절로 이어지는 200m 상점가를 찾는 이만 연간 3000명에 달한다.
‘아사쿠사 문화관광센터’에서는 거리를 훤히 볼 수 있다. 일본 4세대 건축가 구마 겐고가 지었다. 아시아 명품 불상이 집결한 도쿄 네즈미술관, 도쿄올림픽 스타디움 역시 그의 작품이다.
1958년 미나토구에 지어진 도쿄타워와 도쿄돔, 도쿄스카이트리는 모두 아시아 1위 건축회사인 일본 니켄세케이(日建設計) 작품이다. 도쿄타워는 2012년 스카이트리에 그 자리를 넘겨주기까지 333m의 높이로 도쿄 스카이라인 상징으로 평가받았다.
일본은 총 9명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최대 수상자 배출국이 됐다. 여성 프리츠커상 수상자 중 1명인 세지마 가즈요는 건축에 진심인 명품 브랜드 프라다와 도시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본 건축가들은 설계를 통해 건축가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사회적 역할도 한다. 야마모토는 일본인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많은 이유로 “일본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 김수근·김중업 잇는 ‘한국 현대건축’ 발전은?
한국은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 한국 건축가들은 대개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디자인이나 기능을 강조한 설계보다 효율성을 우선해야 한다. 사회적 메시지는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서울은 재미난 건축 요소를 주입할 기회가 있다. 1993년 문을 연 서초구 ‘예술의전당’은 갓 모양을 한 오페라하우스와 부채꼴 모양의 음악당 등 전통에서 착안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고(姑)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가 설계했다.
한때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실험적 건축물을 지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국내 최초 주상복합아파트 ‘세운상가’는 천재 건축가 고(姑) 김수근 작품이다. 1967년 개관식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참석했을 정도로 화제였다. 서울시는 최근 이곳을 녹지로 만드는 등 일대를 재개발한다고 했다.
김수근과 함께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인 고(姑) 김중업이 1962년 완공한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은 지금도 한국 건축 명작에 꼽힌다.
서울에서는 이러한 독창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축 활동이 제법 이뤄지고 있다. 서울 동부권 랜드마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외관은 거대한 우주선 모양이다. 1500석 이상 공연장을 갖춘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복도는 튜브같이 생겼다.
■ 랜드마크, 외국인 설계가 ‘국룰’이지
동시에 한국인 건축가가 지은 서울 랜드마크는 점점 보기 어려워지는 추세다. DDP 설계는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주도했다. LG아트센터 서울은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작품이다. 한국에서 서울 롯데월드타워(555m)와 부산 엘시티(412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건물인 여의도 파크원(318m) 설계가는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다.
이처럼 외국인 건축가를 선호하는 기조는 민간뿐 아니라 공공 영역에서도 빈번하다. 최근 서울시는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지명설계공모’ 최종 당선작으로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의 작품 ‘SOUNDSCAPE(소리풍경)’을 선정했다. 심사위원장 역시 미국 출신 건축가 톰 메인이다.
뉴욕 하이라인파크를 닮은 ‘서울로 7017’는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위니 마스가 맡았다. 랜드마크 설계는 외국인 설계가를 쓰는 게 ‘국룰(보편적인 규칙)’이 돼 버렸다.
■ 도쿄 ‘창조 도시’ 되는 사이, 서울은 ‘짝퉁 도시’
건축업계에선 서울 랜드마크 등 대형 건축물을 설계할 기회가 국내 건축가에게도 주어져야 한국 건축이 발전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천의영 한국건축가협회장(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DDP를 만들 때 그랬듯, 많은 발주처가 외국 유명 건축가를 상대할 때는 공기나 예산을 더 늘려주지만, 한국 건축가에게는 보수적인 기준을 강요한다”며 “표준화된 건축물이 양산되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주요 건축물만큼은 최대한 건축가의 설계안을 실현시켜줘야 청년 건축가들이 설 자리가 생길 것”이라며 “한국 건축계 발전을 위해선 반드시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서울시는 ‘건축 도시’를 표방한다면서 국내 건축가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해외 랜드마크를 베끼려는 시도만 한다”며 “가장 큰 도시가 국내 건축가를 홀대하는데, 다른 군소 지자체가 한국 건축가를 찾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서울시는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영국 출신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을 위촉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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